엄마가 내게 남긴 한 가지

by 마리앤느

“밥은?”


엄마가 늘 가장 먼저 묻던 말은 무뚝뚝한 이 한마디였다. 엄마가 살아 계신 동안 내게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이 아마도 “밥은?” 일 것이다.


실로 그랬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밤늦게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내게 엄마는 “배는 안 고파?”라고도 물었다. 끼니때가 한창 지난 시간인데 자정을 향해 가는 그 시간에도 엄마가 가장 궁금한 것이 그것이라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내 대답이 “괜찮아요”면 엄마의 마음은 한결 느긋해진다. 그러나 내가 “출출해요”라고 답하면 엄마는 하루 종일을 떨어졌다 이제야 만난 딸의 눈을 마주 봐줄 겨를도 없이 주방으로 줄행랑을 친다.


달그락달그락 그 늦은 시간에 싱크대 앞에 서서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을 내다 주는 엄마, 그리고 눈이 감기다 시 피한 채로 그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있는 내 앞에 앉아서 말없이 그 모습을 보며 기다려주던 엄마... 내가 엄마를 기억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장면이다.



일요일, 늦잠을 자던 그 아침에도 눈을 뜨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주방에서 들려오는 분주한 소리였다. 톡톡톡톡, 탁탁, 달그락달그락... 그 소음들에 미간을 찌푸리고도 쉬이 일어나지 못한 채 침대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나를 기어이 일으키고야 마는 것은 ‘칙칙칙 치이익’ 하는 전기밥솥의 압력 빠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나면 신기하게도 눈이 떠졌다. 나를 부르는 소리처럼 들렸던 걸까. “일요일인데 잠도 못 자게...” 잔뜩 볼멘소리를 하며 그제 서야 몸을 일으키고는 했다.


때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했는데, 그날은 엄마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하교 길에 불쑥 데려왔던 날이었다. “아줌마 저희 왔어요” 친구들의 인사에 “왔나?” 하고 말하던 엄마. 그런 날은 “밥은?”하고 묻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뒤,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깔깔대던 우리를 향해 엄마가 말한다. “야들아 나와서 간식 무라.” 어느새 상 위에는 꼬치까지 끼워서 따끈하게 끓여낸 어묵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놓여있었다. 포장마차에나 팔 것 같은 그런 어묵꼬치에 간장 양념장까지...


정말 이런 순간마다 나는, 밥을 먹었는지가 세상 제일 궁금한 우리 엄마다 싶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사실상 내게 “밥은?” 하고 물어줄 사람이 없었다. 온종일 학교를 헤매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서서 불 꺼진 방 창문을 쳐다보며 나는 혼자 조용히 읊조리곤 했다. “밥은?” 그 한 마디가 목구멍을 울리며 흘러나오는 순간이면 눈물이 가득 고였다. 왠지 엄마가 저 어딘가에서 보글거리며 밥을 짓고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나를 위해 밥을 지어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그 엄마가 이 지구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밥은 잘 먹고 다니제?”


때론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고모도, 삼촌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묻곤 했다. 마치 밥을 잘 먹고 다니는 것이 내 안위를 대변해주는 답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두들 그걸 궁금해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엄마의 “밥은?”이라는 인사를 더는 들을 수 없는 내 상태를 더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더없이 마음이 추웠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때 나는 한 번도 그 물음 앞에 솔직하게 “아니오”라고 말해 본 적이 없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인 것을 알면서도, 밥 한 끼 해 주거나 사 주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은 내 피붙이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에게 하듯 “밥 줘” 라거나 “배고파” 혹은 “생각 없어”라는 내 진심들을 말할 수가 없었다.


먹다 먹다 라면이 질려서 라면을 끓이고는 면은 죄다 버리고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서도 나는 그 질문 앞에 “네 잘 먹었어요. 너무 잘 먹고 다녀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적어도 그들만이라도 평안하길 빌어주는 일이라는 걸 나는 느끼고 있었고 그렇게 훌쩍 어른이 되어 갔다.





세월이 흐르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날은 당시 교사였던 내가 아이들을 인솔해서 몇 박 며칠로 경남 밀양에 캠프를 다녀왔던 날이었다. 밀양은 우리가 있는 내내 40도를 웃돌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딩들과 며칠 동안 씨름하는 일은 너무나 지치는 일이었다. 서울역에서 아이들과 헤어질 때의 그 해방감.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 세도 없이 욕실로 들어가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할 때의 그 개운함...


그때였다 밖에서 “칙칙칙칙” 작은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옷을 입고 욕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밥이 끓는 구수한 향이 온 집에 가득하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도착할 나를 위해서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밥을 예약으로 안쳐놓고 간 것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왠지 귓가에 누군가가 “밥은?” 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그럼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별로” 라거나 “안 먹었어” 라거나 “맛있는 거 같이 먹자”라거나...


그 순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밥으로 밖에는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엄마 덕분에, 뜸을 들이고 있는 밥솥 앞에 서서 그렇게 나는 밥으로 건내졌던 엄마의 사랑들을 추억하고 있었다. 엄마가 꼭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오롯이 나를 위해 갓 지어낸 밥 한 그릇. 그 밥 한 공기를 떠서 놓고 한참을 쳐다 본다. 아련하다.

그랬구나. 밥이 이렇게나 힘이 셌구나... 먹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따뜻했다. 나는 그날 그렇게 불 꺼진 자취방 앞을 서성이던 그 몇 년 치의 위로를 다 받았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매일 같이 밥을 한다. 아침을 먹고 나면 미련 없이 방에 들어가 놀던 녀석들이 점심 무렵이 되면 신기할 정도로 내 주변을 어슬렁댄다. 아이들이 내 주변을 어슬렁대기 시작하면 젖이 돌아 옷이라도 젖은 사람 마냥 나는 황급히 주방으로 달려간다. 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드는 내 손놀림이 분주하다. “엄마 오늘 점심은 뭐야?” 아이가 어슬렁대며 묻는 말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나는 바쁘게 음식을 지어낸다.



아들은 미역국을 좋아하지, 딸은 고등어를 좋아하지... 그렇게 한 상을 차려 함께 밥을 먹으면 그제 서야 내가 쏟아주어야 할 사랑의 분량을 다 쏟아낸 듯 마음이 부듯하다. 아이들이 엄지손가락이라도 척하고 올려주는 날이면 우수 어머니 표창장이라도 받은 냥 마음이 좋다.


그러고 보니 엄마도 그랬을까 싶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던 엄마가 어쩌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말도 없고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몰랐고 노상 밥 이야기밖에는 엄마에게 들은 말이 없는 것 같아 때론 서운하기도 했는데, 이만큼 지나고 보니 살다가 힘이 들면 엄마 밥이 생각난다. 삶이 버거워 조금 기대어 쉬고 싶은 순간마다 내 감각은 끊임없이 엄마가 해 주던 밥을 갈망했다. 엄마가 막 무쳐주었던 재래기, 엄마가 막 부쳐주었던 파전, 엄마가 막 끓여주었던 김치콩나물죽... 정말로 그랬다.


큰 애를 임신해서 입덧으로 고생하던 그때에도 내가 한 번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했던 건 엄마 밥이었다. 애 둘 키우며 종종거리다 병이라도 나면 나는 또 엄마 밥을 떠올린다. 엄마가 그리운 어떤 날 혼자 한탄할 때면 “이럴 때 엄마가 살아서 밥도 좀 차려주고 반찬도 좀 해다 주고 그러면 오죽 좋아?”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밥 밖에는 물어볼 줄 몰랐던 엄마가 이렇게 내 가슴속에 엄마 밥을 새겨놓고 갔다.



어느 날 나도 엄마처럼 어묵에 꼬치를 꽂아서 어묵탕 간식을 아이들에게 해 줬다. 그러면서 괜스레 ‘외할머니가 말이야~’ 하며 엄마 자랑도 해 본다. 엄마 닮아 나 역시도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엄마지만 그래도 나도 엄마가 내게 그랬듯 힘들때면 생각나는 따뜻한 기억 하나쯤은 주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엄마를 추억하며 엄마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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