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렇게 우리 곁에 남겨졌다

엄마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

by 마리앤느

날이 쌀쌀해지면 엄마는 더없이 바빴다.


시장 귀퉁이에 있는 작은 털실 가게에 가서 각양각색의 털실을 사 가지고 온다. 그리고는 밤낮없이 뜨개질을 했다. 밥을 해 먹이고,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시간만 나면 엄마는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뜨기 시작했다. 전혀 특별할 게 없던 털실 뭉치들은 그렇게 엄마의 손에 머물고 나면 어김없이 누군가의 무엇이 되었다. 목도리가 되기도 했고, 모자가 되기도 했고, 조끼가 되기도 했고, 가디건이 되기도 했다.


“엄마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걸 떠서 입어? 그런 거 만들어 줘도 사람들 좋아하지도 않아... 털실 값이면 더 예쁜 거 살 수 있는데...”


한창 사춘기를 지나던 나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다. 몸도 아프면서, 몸이나 더 잘 돌보지... 뭐 하러 저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런 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가을이면 언제나처럼 바빠졌다. 엄마 손은 쉴 새가 없었다. 그렇게 엄마 손에 매달려 탄생한 목도리나, 털모자 등은 어느새 사람들에게로 가서 겨울 내내 그들을 지켰다.


어느 겨울이든, 친인척들이 모일 때면 모두 털모자나 털목도리를 하나씩 매고 있었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사촌동생부터 연로하신 외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그 목도리를 매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예쁘지 않은 투박한 목도리였다. 길거리에서 만 원이면 살 수 있는 목도리보다도 예쁘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은 따뜻하다며 그 목도리를 꼭 하고 다녔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모든 식구의 목을 털실로 두르고도 엄마의 뜨개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친가 외가 식구들을 지나 가깝게 지내는 이웃 사람들에게 그리고는 어느 날에는 내 담임 선생님에게까지 엄마의 목도리가 전해졌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 동안 겨울이면 엄마는 한결같았다.






어느 해 11월, 엄마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엄마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다가, 방 한 구석에 놓여있는 엄마가 미처 다 뜨지 못한 털실 뭉치를 발견했다. 가방에서 꺼내서 펼쳐보니, 작년부터 할머니를 드리려고 뜨기 시작한 가디건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드리겠다며 열심을 다해 뜨던 그 가디건은 지난봄 엄마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면서 우두커니 그 자리에 몇 개월째 놓여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결국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먼길을 떠났다.


‘그렇게 열심히 뜨더니만... 이걸 놓고 어떻게 갔대?’


가디건을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애지중지 애를 쓰며 떴지만 미처 다 완성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놓인 그 가디건이 꼭 나 자신 같았다. 그렇게 애지중지 기르던 나를, 내 인생이 완성되어 가는 걸 끝까지 보지 못한 채 엄마는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나는 가디건을 꼭 끌어안았다. 그 어딘가에 묻어있을 엄마의 손길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다 완성되지도 않은 그 가디건이 내 피부에 닿자, 장례를 치른 이후로 내내 외롭고 춥던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졌던 건 단지 나의 착각이었을까.



엄마는 뜨개질을 하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어김없이 시장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뜨개방에 갔다. 엄마에게 이모뻘은 되어 보이는 연세가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그곳을 지키고 계셨다. 그 가게 안에는 아주머니의 뜨개 세월을 증명해 주는 나름의 작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내 눈엔 죄다 촌스러운 것들이었지만 엄마에게 그것은 교본이었다. 엄마는 그 가게를 들릴 때면 아주머니의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힌트를 얻기도 하고, 털실을 몇 개를 사면서 뜨개질 도중에 봉착한 어려움을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해결하곤 했다.


엄마가 뜨개질을 하고 있을 때 한 번도 엄마에게 잘한다고 해 준 적 없는 딸이, 엄마의 완성되지 않은 가디건을 품에 안고서는 그 뜨개방을 떠올렸다. 가방에 주섬주섬 챙겨 넣고선 뜨개방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었다.


딸랑딸랑, 문이 열리고 종소리가 나자 뜨개질에 열중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휙 돌아보신다. 젊은 아가씨가 무슨 일로 여기에... 하는 의아한 눈빛이 나를 향한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하는데, 나는 목이 메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방에서 엄마의 가디건을 꺼내려고 하는데 아주머니가 먼저 나를 알아보신다.


“아 그 집 딸이죠? 자주 오는 키 작고 예쁘게 생긴 아줌마. 맞죠? 가만히 보니 엄마를 닮았네.” 하시며 웃으신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없는데, 나에게서 엄마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엄마는 그렇게 내게 엄마를 새겨놓고 떠났구나 싶다.


조심스레 엄마의 가디건을 꺼내 아줌마 앞에 내려놓는다. 좀 완성해 주실 수 있냐고 묻자, “안 그래도 궁금했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줌마가 요즘 통 안 보이대?”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아주머니는 세상 가장 안타까운 표정을 하시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물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아주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학생 내가 가디건 예쁘게 만들어 줄게요... 아무 걱정 말아요.”



며칠 뒤에 정말로 예쁘게 완성된 가디건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용을 좀 드리겠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려도 한사코 거절하시던 아주머니.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드리고는 돌아섰다. 엄마의 마지막 작품은 그렇게 완성됐다. 비록 아주머니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그리고 사라진 엄마 대신 엄마의 마지막 가디건을 내가 할머니께 전해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가디건을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훔치셨다.


“안 입어도, 보기만 해도 따숩다. 야야.”


할머니는 잘 보이는 곳에 옷을 걸어두시곤 겨울 내내 물끄러미 가디건을 바라보셨다. 마치 엄마를 바라보듯이. 그렇게 엄마는 떠나던 그 해 겨울에도 누군가의 겨울을 지켰다. 나는 그 사실이 기뻤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엄마가 없이도 매년 겨울은 찾아왔고, 엄마가 없어도 엄마가 떠준 목도리를 한 채 우리는 모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 해. 세월이 십 년 가까이 흐르자 엄마의 목도리도, 조끼도, 가디건도 점점 사라졌다.



그러고도 몇 년이 더 흐르고 나는 엄마가 없이 결혼을 했고, 엄마가 없이 아이를 낳았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가에 아이를 보여드리려고 남편과 내려갔다. 온 가족이 모여서 잔치를 벌이는데, 작은 외숙모가 작은 선물 꾸러미를 내게 내민다. 예쁜 포장지를 벗기고 상자를 열던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 상자 속에는 십 년도 더 전에, 엄마가 이제 막 걸음마를 하던 사촌동생을 위해 떠 주었던 노란색 털모자와 조끼가 들어있었다.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돌아가신 엄마가 마치 이 날을 위해, 볼 수 없을 미래의 외손주를 위해 미리 남겨놓은 선물 같았다. 촌스럽기 그지 없는 그 털모자와 조끼가 이토록이나 가슴을 저미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랬다. 엄마가 없이도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런 나날들 속에서 문득 문득 엄마가 그리웠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난 뒤로는 더욱 자주 엄마가 그리웠다. 이럴 때 엄마가 있었더라면 하며 눈물을 훔치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나를 돌보는 엄마 마음도 이랬을까 싶어 먼 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날들이 왕왕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내 인생에서 영영 사라진 것 같았던 엄마였다.



그런데 이렇게 불쑥 엄마의 따스한 손길이 다시 내 인생을 찾아왔다. 따뜻한 선물로.








엄마는 왜 그렇게 열심히 뜨개질을 했던 걸까.



나는 아직도 엄마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랬다. 엄마의 마지막 미완의 작품을 아주머니의 손을 빌려서라도 완성하면서, 문득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생을 마감한 엄마의 인생이 그렇게라도 완성되길 바랐다. 너무 짧았던 그래서 너무나 많은 아쉬움을 남긴 그 인생이 이렇게라도 잘 마무리되길... 나는 정말로 바랬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엄마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픈 몸을 이끌고 언제가 마지막 날일지 모르는 인생을 살면서,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엄마는 무엇이라도 우리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을 그 어떤 것을, 그렇게도 남겨주고 싶었나 보다. 들여다볼 때마다 ‘그래도 엄마가 나를 사랑했었지’라고 생각할 만한 그 어떤 기념비를.






또다시 겨울이다.


겨울옷을 꺼내려 옷장을 이리저리 뒤지다 엄마가 떠준 노란 목도리를 발견했다.

나는 또 한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목도리 한 땀, 한 땀마다 엄마의 손길이 묻어있다. 나는 그렇게라도 잠시 엄마를 추억한다. 그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