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야?"라는 말속에 담긴 마음

by 마리앤느

"딸이야?"


자주 드리지도 못하는 전화에 내 목소리를 듣고 아버님이 하시는 첫마디는 언제나 이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지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버님은 한결같이 "아버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딸이야?"하고 대답하시곤 했다. 딸 같이 살갑게 굴 줄도 모르는 무뚝뚝한 며느리를 향한 아버님의 한결같은 마음은, 어쩐지 코끝이 찡해질 만큼 따뜻한 것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또 한 가지의 부담은 그런 것이었다.

각종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들. 성실하고 싹싹하고 예쁜 여주인공들은 어째서 다들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출신이 아닌지, 그리고 어째서 그런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주인공들은 다들 그렇게 좋은 집안 출신에 많은 걸 가진 사람으로 그려지는지... 그리고 꼭 그들의 사랑에는 "부모의 반대" 그것도 그 여자가 가진 어떤 점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 주인공이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거나, 좋은 집안이 아니라거나 하는 이유로 인한 반대가 꼭 등장을 하는 건지... 그때 나는 그런 류의 드라마들이 참으로 진절머리가 났다.


집중해서 열심히 보지도 않았지만, 지나가다 얼핏이라도 보게 되면 어쩐지 불쾌함이 가시질 않았다. 사람보다는 사람의 조건을 보고 반대하는 부모의 모습도 불편했지만, 마치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찍어내는 미디어가, 그리고 누군가에겐 진짜 가슴 저미는 아픔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누군가의 재미를 위해 이름만 다른 무수히 많은 드라마 속에서 그려내고 또 그려내는 것이 참으로 불편했다.


그리고 그 무렵 나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내게 조언들을 건네곤 했다.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임용을 보라고. 누구도 너를 흠집 내지 못할 만큼 좋은 직장을 가지라고. 또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너를 거절할 사람이고 집안이라면 네가 먼저 거절해 버리라고. 그런 이야기들은 분명 나를 생각해서 걱정해주는 이야기들인 걸 아는데도 이상하게 듣고 돌아서면 마음이 더 추워지고 고립되는 것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결혼을 꼭 해야겠다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전혀 배려가 없는 미디어 속 이야기들과 사람들의 상상력이 곁들여진 충고들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결혼과는 마음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남편을 만났다.

그리고 정말 이 사람과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러나 연애를 하는 내내 결혼하자고 노래를 부르는 남편에게 선뜻 그러자고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그 진절머리가 난다 했던 각종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눈에 비친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걸 믿고 가 보기엔 이미 사람들이 내게 들려준 누군가들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았다. 결혼,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는 어느새 그들 중에 누군가가 되어 거절받거나 상처 받는 스토리를 상상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저하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아직 결혼을 생각하긴 이른 나이라는 핑계와 함께.





또다시 세월이 흐르고 시부모님께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따뜻한 환대에 그만 마음이 녹고 말았다. 90살에 가까우신 시외할머님은 "다 키워놓고 갔네"라는 한마디로 내 모든 아픔을 덮어주셨다. 그리고 아버님은 "아들만 둘인 집에 딸이 왔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그걸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다.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고, 시부모님이 친정부모님처럼 편할 수는 없다. 시부모님과 십 년의 세월 동안 모든 것이 아름답고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서운한 순간도 있었고,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돌아서서 입이 쑥 나올 만큼.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그랬다면 아버님께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 번도 빼놓지 않으시고 "딸이야?"라고 부르셨다.


우리의 관계가 화창한 순간에도, 때로 먹구름이 낀 것 같던 그 순간에도 말이다.



그리고 세월이 쌓여 이제 십 년을 바라보자 문득 그런 마음이 들었다. 아버님은 어쩌면 나를 입양하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결혼해서 식구가 될 때, 입으로 "딸이 들어온다"하셨던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으로 나를 딸로 받으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자식이 속을 썩여도 자식인 것처럼, 지구 반대편에 있고 자주 볼 수 없어도 자식인 것처럼, 아버님에게 나는 언제나 "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버님의 늘 변함없는 굳은 의지가 왠지 내 마음을 더없이 따뜻하게 한다. 사랑하는 그 마음 말로 다 표현할 줄 모르는 70세도 훌쩍 넘기신 노인이 애잔한 며느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진한 사랑의 표현.


"딸이야?"

"네 아버님 딸이에요."


수줍지만, 언젠가는 꼭 그렇게 정말 딸처럼 답해드리리라고 다짐해본다. 아버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세상엔 이런 사랑도 존재한다고, 상처와 아픔을 이유로 거절하는 사람들도 이 지구 어딘가에 분명히 있겠지만, 그 상처와 아픔을 감싸안는 사랑도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그걸 그때 알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조금 덜 불안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 아픈 장면들을 마주할 때에도, 사람들의 이야기들 속에 넘쳐나는 거절을 마주할 때에도, '세상이 꼭 저런 것은 아니야 어쩌면 더 따뜻한 곳일 거야'라고 나에게 말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 난 그러질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세상은 참으로 오묘한 곳이라는 것을. 따스한 햇살이 파고들 틈도 없이 깊고 넓은 그늘들 틈바구니에서도 작은 들꽃이 여기저기 피어나듯, 넘쳐나는 거절과 상처들 가운데서도 늘 숨겨진 사랑과 온정과 배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온정을 맛본 자들을 통해서 또 다른 온정이 흘러가고야 마는 것은 또 다른 기적의 시작 이리라.



나도 절실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진심을 담아.


"친구야?"

"동생이야?"

"딸이야? 아들이야?"


그렇게 내가 받은 온정을 흘려보내며 살아가길 나는 오늘도 작은 가슴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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