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그 어딘가에 반드시 있었다

by 마리앤느

엄마 아빠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위로였다. 그랬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가슴에 닿도록 말해주는 누군가를 나는 그토록이나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그런 위로에 대한 갈망이 깊어가면 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깊은 확신이 내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그토록이나 원하는 그 위로를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가슴에 닿도록 위로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설명이 필요했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시간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그래서 나는 지금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



지난한 그 시간들을 겨우 견디며 살아가고 있던 나는 그 이야기들을 모두 소상하게 털어놓을 힘이 없었다. 무언가를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것이 그토록이나 힘든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게다가 나는 이 길고 긴 터널, 나조차 어디에 서 있는지 알길 없는 그 터널의 한 중간에 서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연대기적으로 풀어놔야 할까, 아니면 감정의 흐름을 따라서, 그것도 아니면 두괄식으로, 아니면 미괄식으로... 아픔 앞에서 그런 고민은 참으로 우스운 것이었다. 아픔이란 본디 그렇게 쉬이 몇마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이니었다. 적어도 아픔의 한중간에 서 있을 때 만큼은 분명히 그러했다. 크나큰 슬픔의 덩어리를 쪼갤 수도 그렇다고 펼쳐놓을 수도 없이 흔들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였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다가온 사람들에게조차도 마음을 쉬이 꺼내 보일 수가 없었다. 큰 맘먹고 마음을 드러내려다가도 주저했다. 각색되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아픔들을 꺼내 놓았을 때 그걸 누가 품을 수 있을까... 나도 감당할 수 없는 이 마음을 누가 안아줄 수 있을까... 그 믿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랐던 마음들은 결국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내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결국 내 20대는, 위장된 밝음과 깊은 슬픔의 공존 속에서 활짝 웃는 웃음과 숨죽인 울음의 경계를 서성이는 시간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살아보려 도망치듯 떠났던 여행에서 그동안 그토록이나 목말라했던 그 위로를 받았다. 전혀 생각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나는 지난 몇 년 치의 위로를 모두 받았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찾아간 우피치 미술관에서 별생각 없이 그림들을 서성이고 있던 발걸음이 렘브란트의 자화상 앞에 멈췄다. 이미 여러 곳의 미술관을 돌았고, 많은 그림들 앞에 섰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그런데 왜 그랬던 것일까.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렘브란트의 눈빛 앞에 멈춰 서고 말았다.

따스한 그 눈빛이 내게

"괜찮니? 다 알아... 네 마음... 다 알아..." 하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꺼내보려다 다시 꿀꺽 삼키곤 했던 내 마음을, 내 아픔을, 내 슬픔을 향해서 말을 걸어오는 그 그림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낯선 여행지 어느 미술관에서 한 동양 여자는 그렇게 한참을 울며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는데, 다 안다고 말해주는 그 눈빛 앞에서, 아무런 사심이 없이 그저 나를 바라봐주는 그 눈빛 앞에서, 엄마 아빠를 떠나보낸 뒤 처음으로 가슴에 닿는 위로를 받았다.


말이 아니라 눈빛이, 그저 함께 있어주는 듯한 그 온기가 이토록이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눈이 퉁퉁 붓도록 그림 앞에서 울고 난 뒤 미술관을 나오면서 비로소 나는 믿게되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그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우스운 이야기지만 한동안 내 이상형은 "렘브란트 같은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너무 어려운 이상형 아니냐며 놀렸지만 그 우스운 말 뒤에 숨겨둔 내 진심은 "내 모든 아픔을 알고도 나를 감싸 안을 수 있는 따스한 사람"이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와 지금은 조브란트 씨와 살고 있다. 힘든 이야기를 다 꺼내기도 전에 내 맘을 헤아려주는 사람과. 그래서 언제고 부담 없이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따스한 사람과.


그때 렘브란트 그림 앞에서 그 경험이, 누구에게는 그게 뭐냐 싶을 그 작은 경험이 어쩌면 나를 조브란트에게로 이끌어 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만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함께 살아온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나는 따뜻한 그 눈빛 앞에 내 거대한 슬픔의 덩어리를 어떤 때는 연대기적으로, 어떤 때는 두괄식으로 또 어떤 때는 맥락 없이 쏟아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래도 될까 하는 망설임은 없었다. 내가 너무 불쌍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동정이나 연민을 받을까 봐, 그래서 위로는 고사하고 내 마음이 더 초라해질까 봐 가리고 숨기고 덮어두었던 그 응어리들을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함께 길을 걷다가, 차를 마시다가 불현듯 문득문득 그렇게 쏟아낼 때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묵묵히 따스한 눈빛으로 들어주고 있는 남편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새삼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말해주었던 그 따스한 자화상 앞에서 얻은 위로의 힘으로 나는 이제 내 마음을 조금 더 솔직하게 털어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따스한 눈빛으로 맞아주는 사람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위로는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몫의 슬픔이 반드시 있듯이, 내 몫의 위로도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때 그걸 알았더라면 조금 덜 아팠을까? 조금 더 잘 견뎠을까? 그러나 그때 그 아픔이 있었기에 어쩌면 오늘에서라도 그걸 깨닫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쉬움은 접어두고, 눈물도 털어내고,

다만 내 몫의 위로를 더 찾고 누리며 내 삶을 더 발견하고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야겠다.

인생이 내게 안겨줄 것들을.. 사랑과 위로와 기쁨과 또 때로는 다른 것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렘브란트의 그 위로의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며,

그렇게 다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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