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어 간다

받고 싶은 마음, 주고 싶은 마음

by 마리앤느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7년이 되었다.


내가 숨을 쉬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그 아픈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갔다. 해가 뜨고, 또 해가 지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며 그렇게 계절이 지났고, 그저 견디며 지나왔던 그 시간들이 모여 한 해, 두 해가 되었고 어느새 십 년을 훌쩍 지나있었다.


그리고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엄마가

세월 때문에, 세월 덕분에 점점 잊혀 갔다.


"딸" 하고 부르던 엄마의 음성도, 해가 드는 현관에 앉아 나물을 다듬던 엄마의 실루엣도, '허허' 하고 털털하게 웃던 엄마의 웃음소리도, 어린 시절에는 마냥 따뜻하게만 느껴졌던 엄마 손의 그 촉감도 조금씩 조금씩 빛바랜 사진처럼 옅어지더니 어느새 기억 저편 저 멀리로 증발해 버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엔 엄마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났다.


엄마 말을 조금 더 잘 들을 걸,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걸, 엄마 마음을 조금 더 잘 헤아려줄 걸... 엄마가 그리워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던 철없던 내 모습이 함께 떠올라 눈물이 또로록 흐르고 가슴 깊은 곳까지 서러움이 가득 찼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내가 그러질 않았을 텐데...

그 후회와 회한은 엄마를 잃은 슬픔과 함께 내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만 갔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고, 나도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없이 결혼 준비를 하고, 엄마가 없이 임신을 하고, 엄마가 없이 두 아이를 기르면서 나는 '친정'이라는 두 글자가 그렇게도 가슴 저미게 그리웠다. 고모도 할머니도 내가 그리 느낄까 애를 쓰며 돌보시는데도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서러운 날들이 있었다.


배가 산같이 불러 숨을 쉬기도 힘들던 막달, 누워도 힘들고 앉아도 힘들고 서도 힘들던 그때, 나는 정말로 엄마가 간절했다. 처음 출산을 한다는 그 사실은 내게 막막한 불안을 안겨주었고, 처음 엄마가 된다는 그 사실 역시도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이럴 때 엄마가 우리 집 현관 벨을 누른다면, "누구세요?" 무심한 내 목소리를 듣고 "엄마다. 문 열어라." 하고 말해줄 엄마가 있다면, 막무가내로 찾아온 엄마는 내 주방을 마치 엄마의 주방처럼 들어가 재래기를 무치고, 생선을 굽고, 된장찌개를 막 끓여내어 따뜻한 밥 한 그릇 식탁에 차려놓고선 "어여 먹어라. 힘을 내야지. 엄마가 힘을 내야 된다." 하고 내 어깨를 도닥여 줄 수 있다면....


첫 아이가 열이나 밤새 어찌할 바를 몰라 동동대던 어느 밤, 나는 엄마가 필요했다. 이럴 때 "엄마 내일 좀 와줘. 애가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나 너무 무서워.." 하고 말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 참 서러웠다. 그 말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애들은 다 아프면서 크는 거다. 괜찮다. 너도 눈 좀 붙여라." 하고 나를 도닥여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가슴 저미도록 슬픈 일이었다.


아이들 크는 걸 보면서, 어쩜 저럴까... 어쩜 이럴까..너무 예쁘고 귀여운 날이 있는가 하면, 에효 이걸 어쩌나... 저걸 어쩌나... 걱정되고 속상한 날들도 꼭 어김없이 나를 지나갔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싶었다. 나는 어땠는지, 나도 이렇게 귀엽다가, 울다가, 사랑스럽다가, 떼를 쓰고, 고집스럽다가, 애살스러운 그 모든 순간을 지나며 엄마를 웃게 하고 울게 했는지... 그 시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왠지 모든 게 다 괜찮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날도 나는 다만 눈물을 삼키며 하늘을 멀끔히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러면서 늘 생각했다.

이럴 때 엄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아직도 엄마가 필요한데, 엄마가 반찬도 해다 주고, 내 이야기도 들어주고, 애들도 사랑해주고 예뻐해 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들은 평생 동안 누리는 엄마 품을

고작 20년밖에 못 누렸다는 그 사실이 가슴에 사무치곤 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또 흘렀다.

고물고물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서 학교를 갔고나는 어느새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서른을 지나고 마흔이라는 숫자를 슬며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며칠 전에 남편이 내게 물었다.


"장인 장모님을 만나면 말이야, 만약에 딱 하루만 만날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럼 뭘 하고 싶어?"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엄마랑 여행도 하고 싶었고, 엄마랑 영화도 보고 싶었고, 떡볶이도 먹고 싶었고, 수다도 떨고 싶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손주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싶었고, 엄마 집에서 애들 풀어놓고 편히 쉬고 싶었고, 엄마에게 어린냥도 부리고 싶었다.


뭘 해야 할까... 딱 하루라니... 도대체 뭘 해야 그 하루가 지나고 나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까.... 결코 있을 수 없을 일을 가정하고 내게 묻는 남편도 웃기지만, 그 일에 지나치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 자신도 웃겼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곤 말했다.



"음.. 엄마에게 밥을 꼭 한 번 차려드리고 싶어. 내가 한 밥."



그 말을 하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가 해준 밥은 20년 동안 내내 먹었는데,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밥을 차려드린 적이 없었다.


외동딸이라고 그래도 곱게 길러주신 엄마의 사랑 덕에 주방 근처는 가본 적이 없었기에 결혼하고 주방과 친해지느라 고생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아이들이 엄지 척하고 올려줄 만큼은 해 먹고 산다고 그렇게 내 손으로 정성스레 식사를 차려 대접하고 싶었다.



그랬다. 받지 못한 사랑도 아프지만 주지 못한 사랑이 더 아프다는 걸 나이가 조금 더 들고 나서야 깨닫는다.


서른 즈음엔 아직도 받지 못한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아팠는데, 조금 더 나이가 드니 이 나이에 내가 엄마에게 해야 했을 돌봄을, 섬김을 해 드릴 수 없다는 게 또 아프다.


엄마도 이런 내 마음을 알까?

다오 다오 하던 딸이 자라서 주고 싶은 마음 가득 안고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걸. 그렇게 어느새 자라 나도 너르고 깊던 엄마를 조금씩 닮아간다는 걸. 눈가의 주름이 늘듯 마음의 주름도 늘어간다는 걸.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는 걸.



더는 엄마가 계시지 않음에도, 엄마의 자리를 바라보며 홀로 그리워하고 홀로 씨름하고 또 홀로 견디며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자라왔구나 싶다. 그렇게 상실조차도 나를 길렀구나 싶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