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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un 08. 2021

철학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프랑스 교육

프랑스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파니와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내가 프랑스 공교육을 살펴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게 "왜?"라고 물었다.



"한국이 프랑스보다 학업성취도는 훨씬 높은데  프랑스 공교육을 선택했어?"라고말했다.

그렇다. 그녀의 말은 맞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초중고까지의 성취도가 높은 편이다. 프랑스에 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높은 학구열, 많은 경쟁, 그리고 많은 업무 시간과 업무량과 같은 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외국인에게서 전해 듣는 것은 어쩐지 조금은 슬픈 일이었다.



프랑스에서 2 가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프랑스가 어쩌면 내가 기대하는 것처럼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깊이 들어가서  것은 아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의 특별한 어떤  발견하긴 어려웠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교실은 한국만큼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지 않았고, 한국 교실에서는 흔한   프로젝트나 스마트 TV 같은 기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흔한 빳빳하고 오색 현란한 종이조차도 쉬이 제공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인쇄물이나 종이들은 대체로 이면지였다. 언제나 눈에 보여지는  한국보다 훨씬 노후된  혹은 오래된 모습의 학교였다.

 

그러나 "뭐 별 거 없네..." 하고 돌아서려던 찰나마다 "아!"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전혀 화려하지 않은, 노후되고 낡은 학교에서의 평범한 일상 속에 녹아있는 어떤 견고한 철학 같은 걸 발견하는 순간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고, 멈춰 서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여야 하는 이유가 있냐 라고 묻는다면 사실  프랑스여야만 했어 라고 답하긴 어려웠다.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왔고, 그러나 프랑스에    무엇보다도 프랑스 교육을 가까이서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렜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여야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파니의 질문에 답을 하고자 나는 잠시 생각했다.


"한국은 아주 어릴 적부터 공부를 하기 때문에 점수가 높게 나오는 거야. 그런데 내 생각엔 그 아이들이 행복하진 않은 것 같아. 아이들은 아주 일찍부터 해야만 하는 게 많아. 그리고 아이들은 경쟁을 어릴 때부터 경험해.  그래서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그게 슬퍼. 잘은 모르겠지만 대체로 프랑스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에 비해 더 행복함을 느끼며 사는 것 같아."



짧은 불어들로 떠듬대며 내 생각을 전했다. 그러자 파니는 웃으며 말한다.

아마도 그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고.



그녀는 한국을 참 좋아해서 해마다 한국으로 바캉스를 떠났었다고 한다. 벌써 한국어를 공부한지도 3년이나 되었고, 나의 불어 실력보다 더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지닌 프랑스인이다. 게다가 나도 살면서 딱 한 번 가본 경복궁을 해마다 찾았다고 하니... 모르긴 몰라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은 외국인이라고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녀가 나의 서툰 프랑스어 속 나의 진심을 읽어가다 프랑스 아이들이 더 행복함을 누리며 사는 것 같다는 말에   "c'est vrai. Je suis d'accord"라고  답한다.



 말에 동의한다는 그녀의 말에 왠지 나는 조금 슬펐다.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을 호감있게 지켜봐   프랑스인의 눈에도 때때로 한국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구나...  기사로 읽어오던 내용이었지만 처음 친구가  프랑스인, 그것도 교사이자 엄마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고 나니  마음이 애잔해졌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그래서 교육을 공부하고 싶었다.


어떤 이들은 인재를 길러내는 게 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능들을 습득하는 게 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교육의 목적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추상적인 말 같지만 사실은 더 건강한 생각을 갖고, 더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


그러나 그것에 대한 답이 프랑스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사 그것이 프랑스에 있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었던 까닭은, 그렇게 해서라도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었다.


모두가 문제가 많다고 이대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다른 방법을 찾을  없는건지 아니면 찾기를 원하지 않는건지 도무지   없는  모호한 현실 속에서 오늘도 힘겨운 사투를 했을 아이들을 위해 내가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사실은 나는 프랑스 교육 중 특별히 고등학교 과정에 관심이 많았다. 꼭 프랑스여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랑스 교육 중에서 내 관심을 끄는 것을 꼬집어 찾아내자면 바칼로레아(대입시험)에 출제된 그 철학적인 논제들에 답을 수려하게 적어낼 정도로 깊은 통찰과 사고력 그리고 비판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길러내는 교육은 과연 어떤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파니에게 물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사회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 비판하는 교육을 하지 않느냐고. 그러자 그녀는 말한다. 맞다고 프랑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그러고 나서 다시 그녀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프랑스의 아이들은 어릴 때 많은 시간을 가진다고, 때로 책을 보고, 때로 밖에서 뛰어놀고, 때로 친구와 함께 하고,  때로는 운동을 한다고... 그러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루한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그때 그들은 깊이 사고하게 된다고. 아이일 때는 그런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자신의 생각, 그들만의 견해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고. 그리고 우리는  시간을 지켜주는 것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국의 학원문화를 잘 알고 있는 그녀는 행여라도 자신의 말이 내게 불편함이 될까 아주 조심스럽게 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파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6 동안 학교를 가고 나면 2주는 방학을 하는 학기제와  달여의  여름방학, 그리고 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수요일마다 맞이하는 주중 짧은 휴일까지도, 게다가 2시간의 점심시간까지.  모든 것이 어쩌면 그런 맥락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아 그저 놀리는 게 아니구나... 그 놀이의 시간, 그 자유의 시간을 통해서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진 자신을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기 이전 반드시 충분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고 자기 안에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것 그 과정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프랑스 어른들의. 그렇게 자라온 프랑스 어른들의 나름의 교육관이었는지도. 그래서 아이들에게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에서는 혼자 벤치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혹은 사색에 잠긴 사람들을 정말 흔히 볼 수 있다.


한국과는 참 다른 풍경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 보통은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멀리 갈 것 없이 나만 해도 그렇다. 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고 산책을 하면서도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를 듣고 있거나 혹은 벤치에 앉아서도 이북을 보고 있곤 했다. 그러나 어떤 인지심리학자가 말했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지갑을 두고 나가서 걷기 시작할 때 "움직이는 철학의 시간"이 펼쳐진다고.




프랑스는 어쩌면 철학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철학하는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고집불통의 사람들이 그 나름의 자유와 질서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도무지 정답을 찾을 수 없는 다양성의 나라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공교육이 어떤지  깊이 살펴보고 싶어 졌다. 지루할 권리를 허락하는, 그리고  지루함 속에서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허락하는 교육,  기저에 깔려있는 철학이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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