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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un 09. 2021

교장은 매일 아침 교문을 지킨다


프랑스에 와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것 중에 하나는 등하교를 할 때마다 교장이 매일 교문 앞에 서서 학생들을 맞이하고 학부모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때론 교장 앞에는 학부모들이 줄을 서 있곤 했다.


교직원 파업 때도, 그 이후 코로나로 인해  급변하는 학교의 상황들에 대해서도 학부모들은 매일 아침 교장에게 자세한 상황들을 묻곤 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행정적인 문제들, 예를 들면 급식비가 잘못 청구되었다거나, 학교에서 요구한 행정 서류들을 제출하는 일, 아이가 아파서 결석을 한다거나 등의 사소한 행정적인 일들은 교장에게 문의하거나 제출하는 식이었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심지어는 학부모 상담 때 아들의 담임에게 행정 서류에 대해 물었더니 그 선생님은 말했다.


"아 그건 디렉터가 할 일이에요. 디렉터에게 물어보세요. 엄마와 아빠가 역할이 다르듯 우린 다른 역할을 합니다."


학교 생활에 대해 무엇이든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노란 알림장에 궁금한 걸 언제든 적어보내라 하던 친절한 담임선생님의 이런 대답은 내게 사뭇 낯설었다. 한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대답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들이 배탈이 나서 결석을 하게 됐을 때, 나는 교장에게 메일을 썼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내게 전화를 했다. 아들의 상태가 어떤지, 혹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닌지, 여러 가지를 점검하기 위한 절차였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볼 때, 실제로 프랑스 교사들은 정말 수업에만 집중하고, 모든 운영에 따르는 행정 처리는 디렉터가 맡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그들의 관계는 서양 특유의 수평적인 관계가 적용되어 정말 수평적인 듯했다. 즉 한국에서의 교장 - 교감 - 부장- 교사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학교는 테러의 위험 때문에 항상 교문을 잠가 두고, 교문 바로 옆에 가디언이 상주하고 있는데.. 우리로 치자면 수위 아저씨? 그런데 가끔 급하게 물어볼 게 있어서 '디렉터와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고 물으면 그들은 정말 시큰둥하게 말하곤 한다. "몰라요. 학교 어디 있을 거예요. 찾아보세요. 아님 전화를 해 보던가요.." 뭘 그런 걸 굳이 나한테 물어보냐는 느낌... 처음엔 무척 당혹스러웠다만, 이런 일들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나는 왠지 씩 웃게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들의 담임은 학기 초에 아이들이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많이 아플 경우 학교를 보내지 말라고, 혹시 학교에 보내더라도 약은 보내지 말라고 그걸 교사가  챙길 수 없다고 공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정 먹여야만 된다면 디렉터한테 이야기하세요. 그가 처리할 거예요."  


그날 남편과 둘이 집에 와서 한참을 웃으며 이야기했다. 참 신기하다고.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나니, 교장이 너무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담임은 계속 바뀌지만, 입학을 위해서 만났던 사람도 교장이었고, 매일 아침 교문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교장이었으며, 결석하게 되면 전화를 주는 이도 교장이니.... 딸의 유치원에서도 아들의 학교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눴던 사람은 단연 교장이었다.



한국에서라면 교장을 만나는 일은 상당히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충분한 이유가 필요하고 양해가 되어야 하는 일처럼 여겨진다. 아니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 한 번 하는 일도 그렇다. 실제로 내가 학교에 근무할 때에도, 학부모라 하더라도 교장과 상담을 원하면 먼저 담임 혹은 교감 혹은 행정실을 통해 교장에게 그 의사를 전해야 하고 만약 이유가 불충분하다면 아랫선에서 해결되곤 했다. 그렇다 보니 프랑스의 이런 분위기가 나에겐 정말 쇼킹했다.

 




나는 내 프랑스인 친구 파니에게 물었다.

"Pourquoi il est là tous les jour?"

왜 교장이 매일 아침마다 교문 앞에 있냐는 나의 질문에 교사인 파니는 답했다.


"디렉터는 매일 아침마다 등교하는 모든 아이들을 맞아들이고 인사를 해야 해. 그들의 부모도 만나야 하고.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해 늘 궁금한 게 많아.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고 도울 사람이 필요하지. 그게 그가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야.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프랑스는 테러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교장은 매일 아침마다 학교에 문이 열린 시간 동안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기도 해."



학생들에게 매일 인사를 건네는 교장이라니, 매일 교문 앞에서 부모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한 조언을 하는 교장이라니, 게다가 교사들 위에서 지시하는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교사들이 수업을 잘 진행해 갈 수 있도록 학교의 잡다한 행정을 다 돌보는 교장이라니!

 

신기하고 참 재미있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프랑스 학교들의 이런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참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 학부모는 지속적으로 한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며, 도움을 받고, 설명을 듣는다. 그는 학교의 책임자다. 그리고 매일 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교사들은 수업 외에 학부모와의 관계나 다른 부수적인 행정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건 아마도 교사들에게 더 좋은 수업을 위해 달려갈 여지를 충분히 허락해 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디렉터라고 불리는, 그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도리어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많이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임을 아이들은 매일 아침 교문 앞에 서 있는 교장 선생님을 보며 은연중에 배워 갈 것이다. 우리 시대에 그 흔했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같은 시간을 통해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그 어떤 가치를 배워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문 앞에 서 있는 교장의 모습이 좋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수수한 차림으로 교문 앞에 서서 "Bonjour"를 연발하다 종이 치면 조용히 교문을 잠그고 들어가는 전혀 멋있지 않은 이웃집 아저씨 같이 친근한 그 교장의 모습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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