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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ul 27. 2021

나는 고독한 밤이 좋다

"잘 시간이야. 오늘은 아빠 좋은 날인 거 알지? 어서 다들 들어가!!"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아빠와 함께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간다. 딸의 입술이 쑥 나와 있긴 했지만, 애써 못 본 척을 한다. 아빠와 자는 날, 일주일에 고작 하루, 많아도 이틀을 넘기지 않는 "아빠 좋은 날".

이 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딸의 못내 서운한 마음을 오늘만큼은 모른 척한다.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히자, 모든 소음도 함께 사라진다.그리고 드디어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마음속에도, 집 안에도.


휴우, 이제야 조금 살겠다.


잔잔하게 음악을 틀어놓고, 마무리하지 못한 집안일을 마무리 짓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준비해서는 모두가 함께 둘러앉았던 테이블에 홀로 앉아 본다. 좋아하는 음악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고, 저 멀리 창 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그제야 아름답게 보인다. 하루 종일 엄마로, 아내로, 누군가의 무엇으로 무장되어 있던 마음의 빗장을 이제야 풀어 본다. 그리고선 이렇게 몇 글자를 글쩍여본다.


이 시간이 얼마나 꿀맛인지.






나는 밤을 좋아했다. 하루를 마치고 밤에 가까워 올수록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달뜨곤 했다. 더없이 고독하고도 자유로운 밤. 아무도 참견할 일 없는 그 적막 덕분에 고독했고, 자는 것 외엔 딱히 해야 할 일이 없기에 더없이 자유로웠다. 나는 그런 밤이 좋았다.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이면 잔잔한 라디오를 켜 두곤 했다. 이소라의 음악도시,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 잔잔하고도 다정한 라디오 속 목소리는 적막을 가리고 고독을 감추어주었다. 간혹 흘러나오는 좋아하는 음악소리는 내 마음을 더욱 달뜨게 만들곤 했다. 그 음악에 푹 잠겨서 책을 뒤적이거나, 몇 글자 일기를 글쩍이거나,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은 참으로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잠시나마 풀어지고 나면, 내일이 있다는 사실이 안온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이 어땠든 내일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막막한 기대를 옹색한 이불 삼아 덮고 꿈나라로 갔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밤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루를 열심히 보낸 나에게 주는 달콤한 그 여유는 한참 힘든 시절에는 또 하루를 버텨내는 위로가 되기도 했고, 한참 바쁜 시절에는 내 마음을 돌아보고 추스르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연하게 누리던 위로의 시간은 한순간 휘리릭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아들을 재우고 어떻게든 거실로 나오곤 했다. 그러나 아들은 혼자서는 잠을 깊이 들지 못하는 아이였다. 나는 아들을 재우고 나오고, 아들은 다시 울며 나를 찾고, 나는 다시 아들을 재우고 나오고, 아들은 다시 울며 나를 찾고, 밤마다 그 실랑이를 되풀이하다 보면 12시가 훌쩍 넘곤 했다.


그렇게 12시가 넘은 시간에 홀로 테이블에 앉아본들, 육아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글 한 자 읽을 수가 없었다. 고작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보고 또 봤던 아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혼자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뿐.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피곤은 쌓여 갔고, 그 마저도 지키지 못한 채 아들을 재우다 골아 떯어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둘째마저 태어나자 당연한 수순처럼 그 밤의 달뜬 마음을 포기해버렸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니, 나는 다시 그 시간을 찾고 싶었다. 혼자 있는 시간. 누구의 무엇이 아닌 그냥 나로 있는 시간, 모든 의무로부터 벗어나 조금은 풀어지는 시간. 적막 속에서 소곤 되는 다정하고도 잔잔한 목소리를 배경 삼아 활자 위를 배회하는 시간.



그러나 그 밤을 되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딸은 도무지 아빠랑은 잘 수가 없다고 반기를 들고 나섰다. "잠은 엄마"라는 공식이 딸의 마음에 꼭 박혀 있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도리도리 수도 없이 흔들었다. 그러면 나는 마음이 약해져 다시 물러서고 말았다. 그래, 조금만 더 크면... 그러나 그렇게 물러서고 나면 어김없이 마음속에 가득한 스트레스가 한 번은 어딘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터지고 말았다. 그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애를 썼던 노력이 억울해 눈물이 핑 돌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런 내가 안 쓰러웠던지, 남편은 딸에게 "아빠 좋은 날"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너희랑 자는 게 세상 가장 좋은 일인데, 그걸 엄마만 독점하니 속상하다는 거였다. 아빠의 겸손한 말이 딸의 마음에 들었는지, 딸은 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다 싶었던 남편은 딸을 구슬리고 구슬렸다. 딸의 비위를 맞추고, 맘에 들도록 놀아주고, 이렇게 저렇게 딸의 마음을 샀다. 딸은 "그럼 딱 한 번 만이야"라는 조건을 걸고 그렇게 아빠랑 처음 잠을 잤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얼마 만에 누리는 자유인가.  

그렇게 우리 집에는 "아빠 좋은 날"이 생겼다. "딱 한 번만"이라던 딸의 호언장담은 "일주일에 딱 한 번만"으로 바뀌었고, 나는 이렇게 모두가 잠든 밤을 누린다. 아빠 좋은 날은 엄마에게도 좋은 날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되찾은 자유의 밤, 그러나 그새 나이가 훌쩍 든 내 마음이 예전 같지가 않다.


길어 봐야 고작 두 시간인 이 시간 동안에도 뭘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오늘 미리 해 두면 내일이 좀 더 편안할 텐데... 그 생각에 뭐 그리 썩 편안하게 있지를 못한다.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유혹을 애써 물리치고 나면, 그다음에 찾아오는 생각은 어떻게 보내야 알차게 보낼까 하는 고민이었다. 하고 싶은 일은 늘 많았다. 글도 쓰고 싶고 책도 보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그러니 감질 맛이 나서, 이 시간은 지나고 나면 늘 아쉬웠다. 빈틈없이 알차게 더 잘 보내고 싶었다. 그 욕심 때문에 늘 애가 탔다.

 




'뭘 하면 좋을까?'


오늘도 애들이 들어간 뒤 온통 그 생각 뿐인 내 모습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인생은 길고, 아이들은 자라고, 홀로 있을 밤은 수없이 많을 텐데, 뭘 이렇게까지 애가 탈까. 인생 경시대회에 나간 사람 마냥 뭘 그렇게 잘 보내보겠노라 힘을 빡 줄까, 이 늦은 밤까지.


오늘 이 밤만큼은 조금 늘어지고 싶다.   

온몸과 마음에 힘을 빡 주고 살던 나를 내려놓고,

조금 편안한 상태에 머물고 싶다. 잘해보려던 모든 욕심도 내려놓고, 누구의 무엇으로의 모든 의무도 내려놓고, 애를 써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은 모든 고독도 내려놓고, 잠시만이라도... 달빛을 의지해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던 그 스무 살의 풋풋한 마음을 추억하며..


구와 숫자들 <평정심> 노래를 곱씹으며

그 음악 속에 그냥 이대로 잠시만 있고 싶다.

그리곤 내일은 더 나을 거라고

그토록 찾아헤맨 평정심도

너무 바빠 만나기 힘든 기쁨도

내일은 더 오래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속삭이며 꿈나라로 가야겠다.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

방문을 여니 침대 위에 슬픔이 누워 있어

그 곁에 나도 자리를 펴네

오늘 하루 어땠냐는 너의 물음에

대답할 새 없이 꿈으로


아침엔 기쁨을 보았어

뭐가 그리 바쁜지 인사도 없이 스치고

분노와 허탈함은 내가 너무 좋다며

돌아오는 길 내내 떠날 줄을 몰라


평정심

찾아 헤맨 그이는 오늘도 못 봤어

뒤섞인 감정의 정처를 나는 알지 못해

비틀비틀 비틀비틀 비틀거리네

울먹울먹 울먹이는 달그림자 속에서

역시 내게 너만 한 친구는 없었구나

또다시 난 슬픔의 꿈을 그렸어


내일은 더 나을 거란 너의 위로에

대답할 새 없이 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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