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7월과 8월은 참 쾌청하다.
밤 10시가 되도록 지지 않는 해,
그리고 오래도록 타올랐기 때문일까?
더 오래도록 더 아름답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
처음 프랑스에 와서
한창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던 그 시기에는
밤 9시 무렵이면,
창가를 맴돌며 어느새 저물어 가는 노을을,
온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내일을 기약하는
그 노을빛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느라 바빴다.
신기한 일이었다.
낯선 땅에서 온통 곤두서고 피곤했던 날이면,
어김없이 그 노을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주방 너머로 저 멀리 거실 창을 내다 보는 것이었다.
테이블에 앉아 일기를 쓰다가도
펜을 내려놓고 거실 창 너머로 지고 있는 태양을 보고 또 보는 것이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창 쪽으로 굳이 돌아 누워 지는 태양과 마주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곤 내가 나에게 들려주듯 속삭이곤 했다.
"아 정말... 아름답다"
꼭 그 하루동안 일상속에서 마땅히 느꼈어야 할
그러나 프랑스에서 홀로 견디느라 쉬이 느낄 수 없었던 감동과 감사와 감격을 그렇게 노을 앞에서 표현하고 나면,
그제서야 그 하루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프랑스에 와서 첫 6개월을 떠올리면,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은 벌써 희미해지고
붉게 붉게 타오르던 아름다운 노을의 강렬한 이미지가 남아있다. 노을 앞에서 받았던 딱 그 하루치의 위로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참 아름다웠던 하늘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의 피로와 불안과 두려움을
아름다운 노을의 기억으로 갈무리하고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
낯섬과 불편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기쁨과 감동은
언제나 그 낯섬과 불편을 견디게 해 준다는 것을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벌써 프랑스에 온지도 2년이 되었다.
입도 뻥긋 못했던 내가 어눌하게나마 원하는 몇마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낯선 삶에 어느 새 익숙함 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통 불편했던 것들이 조금씩 편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익숙함에 비례해,
신기하게도 감격과 탄성은 줄어갔다.
그 해 그 노을과 올해의 노을이 다를 리 없건만은
어느 새 그것 조차도 나에게 더는 '의미'가 아닌 '풍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힘들지 않아서 좋지만
익숙해져서 더 편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더 좋은 것일까
깊은 질문이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그러나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이
불편과 가난한 마음이 사라진 일상이
감격과 감동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 주에 남편과 아이들과
8박 9일의 짧지 않은 여행을 떠났다.
처음부터 여행으로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남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열리는 프랑스 기독교 공동체의 캠프에 참여하고 캠프를 마친 뒤에는 그 근처 몽펠리에라는 도시에서 물놀이를 며칠 한 뒤 돌아오려던 계획이었다.
아이들은 벌써 몇 달 전부터 이 여행을 고대하고 있었다. 방학이 시작된 후에는 날짜를 헤아렸고, 한 주 전부터는 가방을 몇 번이나 쌌다 풀었다 요란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떠나기 이틀 전,
캠프 측에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서 캠프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기차표는 이미 왕복으로 예약했고,
환불이 불가했다.
캠프를 마친 뒤의 숙소도 이미 예약해 두었고.
환불이 불가했다.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여행길 위에 있었고,
환불이 불가했다.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떠나기에는 당장 내일 떠나야 하는 상황에 숙소 조차 예약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캠프 일정 만큼 숙식을 해결하며 여행을 하려면 일단 예상했던 것보다 지출이 많아질 게 분명했다. 그러나 지출이 많은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할 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채 떠나는 여행은 사실상 즐거운 여행이 되기 보다는 고행에 가까울 수 있다는 위험부담도 있었다. 돈을 많이 들여서 하는 고생이라니...
물론 더 많은 추억을 남기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여행길에 올랐다.
정해진 숙소도 없이 갑작스럽게 아비뇽이라는 남부의 작은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아무 것도 정해진 계획도 일정도 없이 정보도 없이 떠난 그 여행이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돈을 들여서 고작 이 정도의 여행이라니....
그러나 8박 9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틀렸는지를 깨달았다.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중에도 우리는 충분히 누렸고, 충분히 즐거웠고, 행복했다. 생각지 않게 가게 된 아비뇽이 좋은 도시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낯선 곳, 불편을 안겨주는 곳,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언제나 더 큰 감격과 감동이 있다는 것이었다.
파리는 공원이 많은 도시다. 그러나 아비뇽의 작고 소박한 그 공원에서 우리는 아기자기한 것들을 바라보며 감격했다. 프랑스에서는 겨울에 비를 맞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제는 거의 일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산을 깜빡하고 떠난 여행자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여행지를 활보하는 일은 또 다른 추억이고 즐거움이었다. 숙소가 정해지지 않아서 무거운 짐을 낑낑 대며 낯선 도시를 헤매고 다닌 일조차도, 일상에서는 서글픔으로 다가올 모든 일들이 낯선 곳에서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곤 했다. 그리고 금세 추억이라 이름붙여졌다.
미리부터 더 많이 찾아보고 더 많이 숙고해서 더 많이 정성을 들여서 가는 여행이었다고 해서 우리가 누렸던 8박 9일보다 더 좋았을까, 꼭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깨닫는다.
그리고 어쩌면 여행은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해진 일상의 그 무덤덤함으로부터 내 자신을 탈피시키려는 작은 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스쳐가는 순간들 속에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감격과 감동을 회복하려는 노력.
편안하고 익숙하고 안전한 것에 길들여져서 어느새 감사를 잃어버리는 자신을 다시 일깨우려는 작은 시도가 아닐까.
돈을 많이 들여서, 더 많이 고생하고 더 많이 불편하고 대신 더 많이 함께하고 더 많이 대화를 나누고 더 많이 웃었다.
돌아오는 길은 정말 피곤했다.
파리에 도착하니 벌써 반갑다.
저 멀리 에펠탑이 보이니 더욱 반갑다.
집 앞에 도착하니,
세상 그 어떤 호텔보다도
우리 집이 제일 좋다는 감탄이 나온다.
여행 내내 이고 다닌 듯한 배낭을 풀러 놓고,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좋다, 좋다, 좋다_
"엄마 호텔도 좋지만, 우리집 호텔이 젤 좋다."
아들의 말에 씽긋 웃는다.
익숙함이 새로운 감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가방을 풀어 놓으며,
나에게 가만히 말해준다.
여기가 나의 새로운 여행지라고,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삶의 여정 가운데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길에서
편안함에 익숙함에 무덤덤해지지 않으리라고
불편함이 찾아올 때 온몸으로 밀어내지 않고
차라리 그 불편함과 함께 깃드는 감격과 감탄을 찾아내겠노라고.
그렇게 나는
긴 여행 끝에
진실한 인생 여행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