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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Mar 15. 2022

네가 힘들 때, 내가 여기 있을게

"엄마, 오늘 점심때 나 혼자 놀았어."


아들의 말에 그만 내 가슴이 쿵하고 떨어졌다.

프랑스에 온 뒤로 종종 있는 일이었다. 어떤 날은 아들이, 어떤 날은 딸이 그렇게 속상함을 토로하곤 했다.


프랑스어를 하나도 모르고 들어간 낯선 학교에서 어쩌면 이것아이가 견뎌내야  오롯이 아이의 이었기에,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엄마는 그런 한마디 말에도 가슴이 쿵쿵하고 떨어지곤 했다.


"그래? 에고 속상했겠네. 뭐하면서 놀았어?"

"그냥.. 그림도 그리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그랬어."

"그랬구나. 그래도 잘 놀았네. 누구나 그럴 때도 있는 거야. 엄마도 그런 적 있었어."


대수롭지 않은 듯,

마치 준비한 멘트처럼 편안하게 말은 했지만,

사실 그것이 내 진심은 아니었나 보다.

늘 그렇듯,

돌아서자 무수한 고민들이 내 속에 찾아왔다.



그나마 아들에겐 단짝 친구가 있었다.


1학년 때부터 줄곧 붙어 다녔는데, 때론 투닥투닥 다투기도 했지만 그러다 금세 다시 풀어지곤 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그렇게 싸웠다 풀었다 하며 나름의 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프랑스 학교에 그래도 한국인 친구가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둘은 사소한 일로 여느 때처럼 투닥인 뒤 다시 풀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 다툼을 놓고 무슨 사연인지 속속들이 알려면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하는 법. 그러나 그런 상식을 갖고 있는 부모라 할 지라도, 내 새끼가 속상해하는 모습 앞에 같이 속이 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무엇을 도와줘야 할까...

몇 날 며칠을 마치 내 문제처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자라니,

안겨주는 고민의 수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사줘, 이거 누구도 있단 말이야,

이거 먹고 싶어, 이거 하기 싫어...

같은 아주 쉽고 가벼운 문제들을 들고 와서 징징대던 아이가, 열 살이라는 나이와 함께 어느새 관계의 문제 앞에 서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폐허에 서 있는 기분을 안기기도 하는,  나라는 존재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안겨주기도 하는가 하면 세상 가장 형편없다는 느낌을 안겨주기도 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고 정을 쌓아가는 관계의 문제는,  관계가 어떤 온도를 띄고 있느냐에 따라 이토록이나  마음도 함께 요동할 수밖에 없는 미묘하고도 섬세한 영역이었다. 설령 그것이 단순한 우정이라  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아들은 꽤나 오래,

친구라 불렀던  아이와 갈등을 겪으며 인생 최초로 관계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중이었다.


걱정스러운 내 눈길을 느낀 걸까?

"괜찮아. 엄마. 나 안 힘들어."

라고 담담하게 말을 하던 아이를 향해,

"그래 잘하고 있어. 엄마는 네가 너무 기특해."

라고 말해 주었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지 못하고 밍기적 대는 아들의 이마를 짚었더니 머리에서 열이 펄펄 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마음이 상하면, 열이 나며 몸 앓이까지 하고야 말던 녀석이었다. 근 1년이 넘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딴에는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목에 스카프를 매 주고, 물수건을 해서 머리에 얹어 주고,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아 두곤, 수시로 방에 들어가 아이를 살폈다. 엄마의 손길이 성기실 만도 한데, 끙끙 앓는 중에도, 물수건 이리저리 돌려가며 차갑게 머리에 얹어주는 걸 한 번 싫다고를 안 한다. 눈을 슬며시 떴다 엄마 거기 있어? 하는 눈길을 던지곤 다시 감을 뿐.


언제 이렇게 큰 걸까?




그랬다. 아이는 감각이 몹시 예민한 아이였다.

돌이 지나면서부터 제 면역력을 만들어가느라 자주 아프곤 했는데, 아프면 열부터 나며 아픈 데다 40도까지 오르는 건 기본이었다.


가뜩이나 초보인 엄마는 고열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곤 했다. 하필 아이는  한밤 중에 열이 오르곤 했다. 아무  없이 하루를  보내고, 도닥여 재우고 나면, 새벽녘에 엄마 엄마 악을 며 울곤 했다.  


열이 나는 아이를 위해 겨우 할 줄 아는 거라곤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을 올려주는 것뿐.  


그러나 내가 아는 그 유일한 방법은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들 뿐이었다. 감각이 민감했던 아들은 물수건의 그 차가움에 소스라치게 놀라 더 자지러지게 울곤 했다.


그럼 초보 엄마는, 그게 감각 때문이라곤 생각도 못하고 행여 크게 아프기라도 한 걸까 놀란 가슴에 아이를 안았다 업었다... 밤은 왜 이렇게 긴 것인가...  가지 않는 시계만을 노려보며, 날만 새 봐라 병원부터 달려가리라 다짐하고 다짐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랬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아이는 제 몸에서 일어나는 낯선 반응과 낯선 감각이 견디기 힘들어서 울고, 엄마는 아이가 이렇게 아플 땐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를 몰라서 울었다.


그러고 보면   거라곤 함께 밤을 지새우며,

엄마인 내가    있는  이렇게나 없다니 안타까워하며 울어준 것뿐.



그러나 그 무수한 밤들을 겪고서야 아들은 제 몸을 제법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아니, 제 몸에서 일어나는 그 불편한 느낌들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는 게 더 정확할 게다.



이제 열 살,

아이는 따뜻해야 면역력이 올라간다는 엄마 말을 기억하는지 스스로 옷을 껴입는다. 죽이라면 입부터 내밀던 녀석이, 누룽지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잔소리를 하기도 전에 양치를 하곤 마스크까지 끼더니 자리에 눕는다. 잠이라면 안 잘 수 있을 때까지 안 자려고 버티기로 유명한 녀석이, 제법 자기 컨디션을 위해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안다. 이렇게 자란 게 느껴진다.


그러나 여전히 열 살,

새벽녘에 엄마를 여러  부른다.

엄마 목말라, 엄마  다리가 너무 아파,

엄마... 엄마....

그 애달픈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그래그래, 괜찮아, 크려고 아픈 거야,

물 마시면 괜찮을 거야,

그래그래 엄마 여기 있어, 걱정하지 마...

눈을 채 못 뜨고도 마음부터 안심시키는 이 엄마는, 초급을 지나 이제는 중급 정도는 된 것일까?  




그러고 보니, 똑같다 싶다.


열이 나고 아픈  무수한 시간을 지나며,

아이는 스스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배웠다.

지금 조금 열이 나고 아파도 이 또한 지나갈 거라는 걸, 결국엔 스스로  이겨낼  을 거라는 걸 믿게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수건 올려주며 훌쩍 거리는 서툰 엄마의 손길을 의지해서 그렇게 아이는 자랐다.



그렇다면, 관계의 문제도 똑같지 않을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그래그래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질 거야,

크려고 그러는 거야,

그럼 그럼 너는 정말로 잘하고 있어...


그리곤

훌쩍이는 아들 옆에서 함께 훌쩍여 주는 것뿐.



아이가 겪는 그 문제를 내가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없고, 해결해 줘서도 안 되지만...


그저  모든 시간이 네게 너무 아프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무릎 꿇는 엄마 품에서,  언제라도 엄마 여기 있어 말해 주리라 마음먹는 엄마 사랑에 기대어, 슬플  그저 함께 훌쩍여 주는 엄마 곁에서,


 무수한 밤을 스스로 견뎌내며,

 그렇게 훌쩍 자라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겠다.

그게 무엇이든,

처음이라 놀라고, 처음이라 두려운 것뿐.

어린아이가 한 번 크게 앓고 나면,

신기하게도 쑥 자라듯,

너도, 나도,

이 시간을 지나며 함께 쑥 자랄 것이라 믿으며.


그래서 생각지 못한 일들 앞에서도

너는 "엄마 이것도 다 괜찮아지겠지?"라고 말하고,

나는 "인생이 원래 그래, 그만하면 참 잘하고 있는 거야" 말해주며,


힘든 일들 앞에 여전히 함께 훌쩍이는

십 대 아들과 중년의 엄마가 되어 가길.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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