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Dec 31. 2020

당연한 것들에 대한 감격



몇 년 전 어느 가을이었다.


아이들을 재우려고 함께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아들이 “엄마 눈이 오면 좋겠어” 그런다.


쌀쌀해지는 게 느껴지자

어느새 아들의 마음은 계절을 앞질러

겨울에 가 있다.

그러나 내가 눈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어 기다려야 해’

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려다 멈칫했다.

기약 없이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는 게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일인지에 생각이 가 닿았다.


이 어린아이에게

굳이 인생은 기다림이 반이란다

라고 말해주고 싶지가 않았다.


“아들 우리 같이 기도해볼까?”

“그래 좋은 생각이야.

 하나님 큰 눈 오게 해 주세요!!!"


이제 겨우 6살이던 아들은 신이 나서

큰소리로 기도를 하곤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그 후로도 매일은 아니었지만

아들이 눈 하고 이야기를 꺼내면

그 밤은 함께 어린아이스러운 그 기도를

되풀이하곤 했다.


몇 달이 지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네 놀이터를 막 지나던 때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졌다.


“아들 눈 온다!”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목소리가 커진다.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번쩍 들어 하늘을 본 아들은

“야호~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달려간다.


오빠의 모습에 딸도 덩달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오빠 뒤를 따라 달려간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신이 난 강아지 마냥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며

감격하고 기뻐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앚혀지지 않는다.


겨울이면 눈이 오는 게 당연할 법도 한데

그 당연한 일들 앞에 이렇게 감격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당연한 일들까지도 모두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살면서 때로 마주해야만 하는 어려움의 시간도

크고 작은 당연한 감사들을 바라보며

쉬이 지나갈 수 있으리라.


2020년의 마지막 날이다.

설핏 돌아보면 아쉬움이 가득한 한 해이지만

조금만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감사한 일 역시도 가득한 한 해였다.


하룻밤이 지나면 너무나 당연하게

내게 주어질 새로운 한 해... 2021년.


그 당연한 한 해를

더 많이 감격하며 살아가길...

먹고 자고 숨 쉬고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 하나하나에  

감동하며 살아갈 수 있길...


그래서 2021년의 마지막 날에 이르렀을 때

오늘보다 조금 덜 아쉽고 더 감사하길...

그렇게 마음이 풍성한 사람으로 자라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걱정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