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느 가을이었다.
아이들을 재우려고 함께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아들이 “엄마 눈이 오면 좋겠어” 그런다.
쌀쌀해지는 게 느껴지자
어느새 아들의 마음은 계절을 앞질러
겨울에 가 있다.
그러나 내가 눈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어 기다려야 해’
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려다 멈칫했다.
기약 없이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는 게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일인지에 생각이 가 닿았다.
이 어린아이에게
굳이 인생은 기다림이 반이란다
라고 말해주고 싶지가 않았다.
“아들 우리 같이 기도해볼까?”
“그래 좋은 생각이야.
하나님 큰 눈 오게 해 주세요!!!"
이제 겨우 6살이던 아들은 신이 나서
큰소리로 기도를 하곤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그 후로도 매일은 아니었지만
아들이 눈 하고 이야기를 꺼내면
그 밤은 함께 어린아이스러운 그 기도를
되풀이하곤 했다.
몇 달이 지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네 놀이터를 막 지나던 때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졌다.
“아들 눈 온다!”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목소리가 커진다.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번쩍 들어 하늘을 본 아들은
“야호~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달려간다.
오빠의 모습에 딸도 덩달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오빠 뒤를 따라 달려간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신이 난 강아지 마냥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며
감격하고 기뻐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앚혀지지 않는다.
겨울이면 눈이 오는 게 당연할 법도 한데
그 당연한 일들 앞에 이렇게 감격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당연한 일들까지도 모두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살면서 때로 마주해야만 하는 어려움의 시간도
크고 작은 당연한 감사들을 바라보며
쉬이 지나갈 수 있으리라.
2020년의 마지막 날이다.
설핏 돌아보면 아쉬움이 가득한 한 해이지만
조금만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감사한 일 역시도 가득한 한 해였다.
하룻밤이 지나면 너무나 당연하게
내게 주어질 새로운 한 해... 2021년.
그 당연한 한 해를
더 많이 감격하며 살아가길...
먹고 자고 숨 쉬고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 하나하나에
감동하며 살아갈 수 있길...
그래서 2021년의 마지막 날에 이르렀을 때
오늘보다 조금 덜 아쉽고 더 감사하길...
그렇게 마음이 풍성한 사람으로 자라가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