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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Nov 21. 2023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하이데거는 이 시대의 정신적 궁핍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자신이 걸었던 사유의 길 전체에 걸쳐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상가이다.

그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이 기술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자원이나

수단으로 간주되는 세계는 궁핍한 세계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물과 자연은 인간이 이용하고 지배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진 탐욕스러운 마음때문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태도는 '시적인 태도'이다.

이는 사물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

지상의 모든 인간과 사물의 성스러운 신비를 경험하면서

그것에 압도되며 그 자체로의 경이를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간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닌,

우리가 존중해야 할 독자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퇴근 후 집에 있는 여유로운 시간에 늘 눈과 손으로 쇼핑몰을 본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옷이 가득하다는 것이 신기하고,  갖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을 느끼는 자체가 재미있어 아이쇼핑으로 3~4시간을

순식간에 흘려보내곤한다. 그만큼 현혹되는 것들을 많이 소비하기도 한다.

예쁘고 다양한 '살 것'들을 바라보는 시간동안 나는 고민도 잠시 잊고,

스트레스도 푼 듯한 느낌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고, 갈증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몇시간을 보내고 나면 허무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다.  

더 예쁜 것, 더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사서 입으면

마치 내 자신이 더 예쁘고 멋있어진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그렇게 몇 번 입다보면 어느새 헌 것이 되어 또 새로운 것을 갈망하게 된다.

 그 상태가 되면 마치 내가 더 나은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그 느낌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 일시적인 착각으로 느끼는 흥분과 기대에 중독되어

나는 또 저녁에 쇼핑몰을 몇 시간 동안 들여다본다.



이러한 나에게 하이데거가 일침을 놓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간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바쁘게 살지만

정작 마음 밑에서 우리는 이러한 삶에 대해 염증과 공허감을 느끼고 있고,

그것을 밀어내가 위해 호기심에 차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쫓아다니고,

그 과정에서 맛보게 되는 긴장과 흥분으로 허한 마음을 메우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착각과 허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할 것은

평소에 진부한 것으로 보아 넘겼던 것들에 대해 놀라워하는 시각을 갖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 빠져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관찰'이 아니라 '호응'하며 '빠지는' 것이다.



이를 경험해보기 위해 우리 반에 있는 17명의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말과 행동, 기분을 면밀히 관찰하기 보다 호응하며 빠져들다보니

개별존재의 신비함이 느껴졌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 여기까지 성장해서

이 교실에 와있고, 여기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이 장면과 그 존재들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런 것일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시선이라 얕은 수준에서 경험을 한 것이리라.

그러나 내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뎌져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일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꿈꿔왔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지겹고 지루하고 버겁다.

그런 나의 눈에 띈 제목,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왜 나의 삶은 내가 꿈꿔온 것을 모두 이루었지만 짐처럼 느껴지는가.

나는 왜 때때로 나의 삶을 끝낼 수 밖에 없는 그 어쩔 수 없는 계기가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이러한 나의 마음 상태를 변화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이런 갈망으로 선택한 도서였다.



이제 알 것 같다.

먼저 내가 정말 사랑했던, 꿈꿔왔던 이 교실에서

나의 아이들의 존재의 신비를 느끼는 것.

우리가 단순하고 소박한 존재를 깊이 있게 보고 경험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그것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좋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경이를 느껴

이 직업을 선택했지만 무뎌지고 익숙해져버렸다.

그리고 자꾸만 이 존재들로 인해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에만

빠져들게 되어 나의 삶이 버겁고 지루해진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 반 아이들을, 그리고 어린이를 가르치는 이 일에

 '호응'하고 '빠져들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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