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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Dec 06. 2023

아빠, 친구가 자꾸 날 때려

친구가 자꾸만 자신을 때린다는 이야기를 가정에서 반복해서 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기분이 많이 상한 채로 전화가 와서 알게 되었다.

해당하는 아이들을 각각 불러 이야기를 듣고, 둘이 함께 불러 또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자신이 맞았다고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그 일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물으니

그 아이는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서툰 표현으로

 “처음에만 그랬어요.”

“시작에만 그랬어요”라고 했다.

무슨 소린가 싶어 여러 가지 다른 표현으로 질문을 해보니,

학기 초반에 한 번 그랬고 그다음엔 그러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상대 아이도 불러서 물어보니 ‘한 번 그런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 이후로 두 아이의 관계를 유심히, 긴 시간 관찰하였다.

‘한 번 때린 적이 있다’고 한 아이는 평소 교사로부터 듣는 긍정적인 반응 중

 ‘친구를 도와주었다’는 행동에 대한 칭찬과 격려에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그 행동의 빈도가 많아지고 강도가 세지는 패턴을 보였다.

‘친구가 나를 자꾸 때린다’라고 한 아이는 모든 활동에서 맨 마지막까지 남고,

마지막에 남았을 때에도 매번 마무리를 채 짓지 못하는 다소 느린 기질을 가진 아이다.

소극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해

자주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어 교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나,

어떤 지시를 할 때 못 듣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면을 가진 두 아이가 마침 또 함께 자주 놀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 있었다.

한 아이가 한 아이에게 매번 교사의 말을 대신 전달해 주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며 지시를 하게 되고,

그것이 놀이 상황에까지 전이가 되어 놀이에서도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떤 행동과 말을 할지를 대신 정해주고 지시하고 강요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지시하다 보니 손에 있는 물건을 채와서 ‘이렇게 해’라고 하게도 되어버렸다.


그런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만 도와주는 거야.’

‘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야.’라고 알려주지만

그 아이는 그 미묘한 경계선을 아직 인지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 보인다.

지난번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그 현장체험학습.

그 현장체험학습에는 관리자 두 분이 함께 ‘지원’을 가셨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 회의 시간에 아주 많은 것을 ‘피드백’ 하셨다.

그분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니 나도 내 입장만을 말하자면,

억울한 것이 많았다.


이 기관에서 지난 시간 동안 있었던 학부모들의 요구나 민원 등을 고려하여

교사들이 행했던 것들,

그리고 담당자인 내가 당일에 노력을 했음에도 발생한 변수들에 대해

 ‘왜 그렇게 했는지’ 혹은

 ‘그것을 대비하기 위한 담당자의 노력이 있었는지’,

하다못해 ‘왜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라도 물어봐주길 바랐다.

애초에 물어보고 알아보려는 마음은 없으신 채로 ‘피드백’을 주신 것 같아서

다 네, 네, 네 하기로 다짐하고 열심히 경청했다.

그 여러 가지 ‘피드백’ 중에 정말로 제일 억울한 딱 한 가지만은 이야기하고 싶어

정중하게 내가 사전에 알아보았던 것, 조치했던 것, 그럼에도 혼선이 있었던 이유를

설명드렸다.

역시나 매를 버는 선택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안면근육이 씰룩거리시더니

내 말이 끝나자마자 더더욱 격앙된 목소리로

더 많은, 더 일방적인, ‘피드백’의 탈을 쓴 비난이 쏟아졌다.

옆자리 선생님이 몰래 내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나에게 ‘피드백’을 토해내듯 쏟아낸 그 관리자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담당자가 자신의 할 일을 했음을 정중하게 말씀드리는데 관리자는 왜 화가 난 것일까?

담당자가 자신의 할 일을 한 것이 화나는 일이었던 것일까?

관리자가 화가 났으면 담당자는 그것이 맞든 틀리든 잠자코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화가 났던 것일까?

추측하건대, 아마 본인은 진정한 피드백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장체험학습이, 그리고 현장체험학습 담당자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오늘 일을 털어놓을 때

‘도움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다.


친구가 자신을 ‘자꾸’ , ‘때리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친구가 자신을 자꾸 때린다’고 이야기 한 어린이의 마음이었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상대의 필요나, 내가 모르는 상대의 역사보다

나의 ‘선의’를 더 중심에 둘 때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상대를 자꾸만 때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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