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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Dec 16. 2023

자책과 오만의 줄타기

‘뭐 눈에 뭐만 보인다’라는 말.

어감이 다소 세긴 하지만

좋은 사람을 볼 때도,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볼 때도

생각나는 말이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

내가 느끼는 느낌,

나에게 떠오른 생각,

내가 타인을 평가 혹은 판단하는 양식은

‘나’라는 필터가 쓰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면,

그 사람이 나의 가장 싫은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기에

먼저 눈에 띄고 유난히 거슬려

불편하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미술활동을 할 때 보면

 ‘사람’을 그려야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 자신과 어딘가 닮은 사람을 그린다.

미술치료에서는 이를 활용하기도 한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객관적이 될 수 없다.

상대를 굉장히 불편하게 하고

불쾌하게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면

도리어 내가 겁이 덜컥 난다.

내가 유난히 불편해하고, 분노하는

상황에 처하면

그러한 감정 때문에도 힘들지만

‘내가 이 상황이 거슬린다는 것은,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힘들다.

내가 나도 모르게

를 투영한 사람을 그리고,

나와 같은 단점을 가진 사람을 싫어하

‘나’라는 필터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는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지만

이 과정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기에

나는 나를 모른다고도 할 수 있다.

교사로서의 나,

인간으로서의 나를 자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은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성의 결과로

어디까지 나 자신을 인정하고

뿌듯함을 느껴야

오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하는 것이 이로운 것인지

그 줄타기가 참 어렵다.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

비추어 보자면

끊임없이 엄격하게 자신을 검열하고

채찍질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재앙이자 불행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 같은 대부분의 일반적인 인간은

어차피 엄청난 깨달음은 얻지 못한다.

내가 공부하고 깨달으려고 노력한 결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느낀 부분은

과거에도 내가 느낀 적이 있었던,

어차피 딱 그만큼이었던 것이 많다.

우연히 발견한 일기장이나

과거에 밑줄 쳤던 책의 대목을 보면 그렇다.

늘 비슷한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그러니 반성이란 오히려 정신건강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깨달음에 그다지 기여하지도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이 많아지고 소심해지만 할 뿐..

그러나 오늘도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오늘보다 내일 더 소심해지더라도

‘나는 저 사람과 다른 사람이고 싶다’

라는 생각 때문에

나 자신에게서 지적할 거리들을 찾는다.

참 괴롭고 피곤하기 짝이 없는 습관이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는 존재와

어떻게 살아가야 적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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