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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Jan 16. 2024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

하루도 안 바쁜 날이 없는

 유치원의 1년.
작년에도, 지난주에도,

어제도 그랬듯

내 업무를 온전히 해내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나면

퇴근길에는 마치 내 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공기처럼

채우고 있는 ‘멍’함이

너무 무거워서 느리게 걷는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내 처지까지 낡아 보이게 만드는

이 낡은 주택가가 싫었다.

그러나 이 골목에서

친구를 하나 사귄 후로는

이곳이 기다림의 장소가

되었다.


겨울에 처음 만난 그 친구는

털이 아주아주 북실북실했다.

얼마나 털이 풍성한지,

다음 해 봄에

오랜만에 만났을 때

그 아이의 본래 크기(?)

보기 전까지는

그 친구가 아주 뚱뚱한

아이인 줄 알았다.  


둥그런 얼굴에

통통하게 뽕실한 하얀 주둥이에는

진한 회색 얼룩이 묻어있다.

아주 특별하고 뚱뚱한 친구이다.

그래서 나는

이름 없는 그 친구를

 '(뚱)땡미'라고 불렀다.
땡미는 남편이나 내가 퇴근할 즈음

남편의 차 밑에서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림자처럼 스윽 걸어 나와

과자를 얻어먹는다.



텅 빈채로 어그적 어그적 걸어오던

내 마음이

땡미를 만나면 다스해져

봄냄새처럼 행복해진다.


무언가 차오르니

발걸음이 다시 가벼워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 때문에

늘 소진되는 나지만,

그런 나를 구하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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