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안 바쁜 날이 없는
유치원의 1년.
작년에도, 지난주에도,
어제도 그랬듯
내 업무를 온전히 해내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나면
퇴근길에는 마치 내 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공기처럼
채우고 있는 ‘멍’함이
너무 무거워서 느리게 걷는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내 처지까지 낡아 보이게 만드는
이 낡은 주택가가 싫었다.
그러나 이 골목에서
친구를 하나 사귄 후로는
이곳이 기다림의 장소가
되었다.
겨울에 처음 만난 그 친구는
털이 아주아주 북실북실했다.
얼마나 털이 풍성한지,
다음 해 봄에
오랜만에 만났을 때
그 아이의 본래 크기(?)를
보기 전까지는
그 친구가 아주 뚱뚱한
아이인 줄 알았다.
둥그런 얼굴에
통통하게 뽕실한 하얀 주둥이에는
진한 회색 얼룩이 묻어있다.
아주 특별하고 뚱뚱한 친구이다.
그래서 나는
이름 없는 그 친구를
'(뚱)땡미'라고 불렀다.
땡미는 남편이나 내가 퇴근할 즈음에
남편의 차 밑에서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림자처럼 스윽 걸어 나와
과자를 얻어먹는다.
텅 빈채로 어그적 어그적 걸어오던
내 마음이
땡미를 만나면 다스해져
봄냄새처럼 행복해진다.
무언가 차오르니
발걸음이 다시 가벼워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 때문에
늘 소진되는 나지만,
그런 나를 구하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