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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치 Feb 17. 2024

졸업, 그리고 시작


이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려서 크리스마스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오면 학년말이 가까워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졸업식 날이 오면 노래 부르는 예쁜 아이들을 보며 펑펑 울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오늘을 너무 기다렸던 탓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믿기지 않는 멍한 상태로 하루를 지나왔다. 그래서 오늘 졸업식을 할 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해마다 내가 끝을 고대하는 것은 아마 내가 그릇이 작은 탓에 책임이 크면서 변수도 많은 교육 현장이 버겁고, 내향적인 탓에 여러 인간관계를 동시다발적으로 최상의 상태로 지속해야 하는 이 일의 속성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잘하고 싶은 욕심까지 더해지니 매해 나의 학년 도는 고될 수밖에.  매번 이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끝을 맞이했지만, 나의 디데이가 어떤 하루였는지는 기억에 전혀 남아있지 않다. 이 학년도를 빨리 해치우고 싶어 끝을 기다렸지만 실제로 그날은 출결 마감에 생기부 마감, 문서 이관, 교실 정리, 업무 인수인계, 새 학기 준비 시작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한 날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고대하던 끝이지만 ‘끝’이라는 말을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코앞으로 새 학기가 다가와 심란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여섯 번째 끝을 맞이했다. 2023학년도에는 기피 학급을 맡아 내 체중이 저절로 6kg나 감량된 만큼 힘에 부쳤기에 이번 ‘끝’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했다. 졸업식 날에 엄청난 해방감이 들고 기쁨과 쾌감이 느껴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업무 때문에 너무 바빴던 탓일까, 쪼잔하게 꽃다발을 한 개밖에 못 받아 서운해서 그런가, 헤어짐의 아쉬움인가. 방과 후 선생님에게만 “우리 00이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어요.”라고 이야기하며 눈물 흘리던 학부모를 보았던 탓일까. 너무 힘들었지만 ‘지치면 안 된다’며 한 해 동안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긴장이 풀려버린 탓일까. 상상 속에서 나는 “끝났다~!!”라고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터트리는 모습이었지만 현실의 나는 좀 공허했고, 슬펐고, 허탈했다. 그래서 마지막 학부모까지 배웅 인사를 한 후 강당으로 돌아와 졸업가운을 정리하다 눈물이 터져 나와 흐느껴 울었다. ‘끝났다!’가 아닌, ‘진짜 힘들었다..’라는 말만 맴돌았다.


사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다. 늘 민원과 사고를 두려워하는 긴장 속에서 아이들을 대하고, 아이들이 들뜨고 산만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서 나는 교실에서 참 차가운 선생님이다. 학부모에게도 나의 부족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늘 거리를 두려 하고, 아이들에게도 일정 선 이상 마음을 나누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내가 한 해 동안 그들에게 거리를 두었던 것처럼 그들도 그저 적당한 감사 인사만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 것일 테다.  


 나도 교실에서 좀 유쾌하고 다정하고 편한 선생님이고 싶다. 내가 그런 선생님이었다면 끝이 더 보람되고 행복했을까? 더 많은 인정과 교류를 얻었을까?  단 하루도 한순간도 그저 그렇게 대충 지낸 날은 없었으나 어린아이들이 있는 교실을 운영하는 만큼, 애정 표현을 배제한 노력은 그다지 가치가 높지 않다. 나는 더 할 수 없을 만큼, 내 능력 이상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렇게 거쳐와 맞이한 ‘끝’이라는 것이 나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가 없었다. 다가오는 2024학년도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좀 슬픈 날이다.


그렇게 좀 침잠되어 있던 마음은 저녁을 먹고 나니 살짝 누그러졌다. 그래서 살짝 기운을 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 행복 내가 챙겨야지.” 라고 다짐하며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꽃집에 가서 나에게 주는 선물을 사왔다. 인자한 사장님께서 꽃을 구경하는 나에게 물으셨다. “누구한테 선물하세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자축하려고요.” 라고 대답했다. 사장님께서 꽃집을 나서는 길에 문을 잡아주시고 배웅해주시며 “축하해요” 라고 해주셨다. 이게 뭐라고,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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