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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웅 Nov 18. 2023

중년 디자이너의 창업일기#03

#03 첫 미팅

_ 오랜 시간 회사에 몸담고 있던 직장인 디자이너의 개인사업 창업과정 이야기를 남겨보려 한다.


회사의 존재이유는 이윤의 창출이고 조직원들의 삶의 영위의 근간이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11월 18일, 사무실을 얻고 사업자를 낸 게 11월 6일이니 창업하고 이제 열흘 남짓 지났다.


창업을 마음먹고 업무를 위한 물리적 공간구성과 행정절차의 기본적인 것들을 계획에 맞춰 착착(?) 진행하면서도 먹고사는 것에 대한 기본적 해결을 위한 이윤창출의 대한 고민 즉 프로젝트 수주에 대한 불안감이 저변에 깔려 있다. 그동안 몸담고 있던 회사는 나름 디지털 에이전시라는 카테고리의 상위에 자리 잡고 있어 시장의 상황과는 별개로 업무컨택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이어지는 것이 일상이었고 영상 디자인 파트의 부서장이었던 나는 그 업무들 중 견적과 기간 그리고 프로젝트의 매력도 등에 따라 어느 정도 일을 골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요가 꾸준해 일을 골라 할 수 있었으니 '을'이지만 어느 정도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에 익숙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디자인 관련 신생 회사들은 소규모이고 업력이 짧아 소위 일을 받을 수 있는 루트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기존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일을 받는다거나 거래하던 고객사와 이야기가 되었다거나 어떤 형태로든 일정한 수입원이 정해진 상태에서 창업을 하면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창업초반 수월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최소한의 회사를 알리기 위한 프로모션 또한 상단 한 시간이 걸리므로 그 사이 대부분은 지인을 통해 일이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이잉~

"아 이사님 안녕하세요~!!"

"어 문실장 정신없지? 혹시 잠깐 통화 가능해?"

"아 네네 그럼요. 말씀하세요."


나 또한 지인의 소개를 통해 첫 프로젝트 수주의 기회가 찾아왔고 고객사와의 두 번의 통화와 몇 통의 메일을 주고받은 후 대면 미팅요청을 받았다. 아직 명함도 안 나온 상황의 창업 첫 미킹, 전처럼 회사 네임벨류가 있어 아니면 말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수주를 위한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에 가득하니 그 생각들이 만들어 낸 묘한 긴장감과 조급함은 약속장소로 향하는 시간을 침묵과 낯설움으로 채웠다.


약속장소에 20분 먼저 도착해 담당자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다시 한번 회사와 나의 상황에 대하여 솔직하고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다.(사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불안해하지 마시고 일을 맡겨 달라는 어필이었다.) 이후 프로젝트의 전반적 개요를 듣고 논의하니 한 시간 정도가 빠르게 흘렀다. 처음 거래하는 업체 담당자들과의 대면은 다행스럽게도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었고 아직 담당자들의 방향이 명확하진 않았지만(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전략을 짜고 어떻게 제작해야 할지 몰라 나에게 힌트나 답을 찾고 싶어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도 익숙하고 항상 해오던 종류의 일이라 프로젝트 브리핑 중 떠오르는 그림들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첫 미팅의 마지막 대화는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요청사항에 대한 얘기였고 그 요청사항이라는 것이 업체선정을 위한 적합성, 검증의 단계로 포장되었다.


담당자분께서는 조심스럽게 얘기했지만 열흘정도의 시간과 프로젝트 관련 된 과제를 줄 테니 만들어 와 봐라. 과제의 아웃풋은 영상이었으면 좋겠고 만들어 온 결과물을 보고 판단하겠다. 하지만 제안비용은 없다. 뭐 대충 이런 내용.....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프로젝트 수주에 있어 디자인신 자체의 일이란 것이 불확실성이 존재하는데

수주를 위해 비용도 없이 몇 날 며칠을 준비해 제안하고 떨어졌지만 정작 나중의 결과물은 내가 제안했던 모습으로 나와 있다거나 좋은 분위기에서 일을 시작하기로 이야기되어도 갑자기 프로젝트가 드롭되고, 일이 한창 진행 중인 중간에도 고객사 상황 때문에 중단되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대행의 구조가 한 두 단계만 더 생겨도 어떤 경우 일을 잘 마치고도 정산이 차일피일 미루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여 수주에서 종료 그리고 정산까지 안정적이고 아주 깔끔한 시장은 아니다.


첫 프로젝트 미팅, 제안비용 없이, 당락의 확신도 없이, 기간이 길어지면 서로 부담이 될 테니 되도록 짧은 기간 동안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아이디어를 내고 결과를 만들어 오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서 정중히 거절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좀 어렵고, 그렇게는 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내 첫 수주의 간절함이 남았는지 내 입장에서는 마지막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제가 작업했던 결과물 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네요. 원하시면 의견과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손바닥만 한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며 잠시 고민을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게 진짜 처음 일하는 신생회사에 대한 검증이었을까? 메일을 열고 안돼도 어쩔 수 없지 생각으로 레퍼런스를 첨부하고 솔직한 의견을 성심껏 적어 보냈다.

 

한 시간 후 즈음해서 미팅을 했던 담당자에게서 답장이 왔다.

업체선정의 적합성을 위한 단계라고 말했던 내용에 대해 급하다 보니 두서없이 말했던 것 같고 레퍼런스와 메일 내용을 보니 필요 없을 것 같다는 회신을 받았다. 더불어 생각하는 견적과 작업기간, 결과물을 함께 잘 만들어 보자는 마무리의 메일.


계약을 해야 일을 진행하는 것이고 선금이라도 통장에 금액이 들어와야 안심이 되겠지만 중년 디자이너의 창업 그 첫 미팅은 이렇게 끝났고 여러 가지 생각뒤로 찝찝한 여운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첫 프로젝트 수주에 대한 기대감 또한 감출 수 없는 게 사실 솔직한 심정이다.


"아....일이 어떻게 진행되려나..."


이렇게 창업 두 번째 주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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