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오랜 시간 회사에 몸담고 있던 직장인 디자이너의 개인사업 창업과정 이야기를 남겨보려 한다.
공간엔 그 사람의 취향이 담겨있다.
자연스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신경 쓰던 옷이나 자동차 이런 남에게 보이는 것들보다 나이가 들어가며 가족과 내가 머무르고 생활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고가의 가구나 조명, 오디오 이런 것들을 마음 가는 대로 장만할 형편은 못되지만 어느 사인가 집에 두세 개씩 있는 식가위를 두고 디자인이 맘에 드는 걸 또 구매하거나 예쁜 접시, 옷걸이, 러그 같은 것들도 조금 비싼 가격이라도 마음에 드는 물건들로 내 공간을 채우고 싶어 하는 변화된 취향의 나를 발견한다. (일종의 소확행의 아저씨 버전이랄까?)
누구에게나 공간의 꿈이 있듯 나도 오랜 시간 회사생활을 하며 언젠가 내 사무실이 생긴다면....이라는 상상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난 내 인생 계획에 창업이라는 단어는 없었기에 그 상상은 그저 아주 짧은 시간의 공상으로 지나갔지만
사무실을 계약하고 약 7평 (22.76제곱미터이다.) 공간을 채울 생각에 행복회로는 쓸데없는 이상형 게임을 펼치며 책상, 의자, 컴퓨터, 테이블, 소파, 조명 등 가질 수 없는 취향으로 상상의 공간을 채웠다 비웠다를 반복했지만 이내 더 이상 꼬박꼬박 들어오지 않을 월급을 생각하니 아니 돈 까먹을 걸 생각하니 시작도 전에 위축이 되었다.
"뭐 손님들 많이 올 사무실도 아닌데."
"당분간 고객사가 올 일이 있겠어."
"디자이너는 컴퓨터랑 의자만 좋으면 되는 직업이야."
누구에게 보여 줄 것도 아닌데. 취향대로 꾸밀 수 없다면, 가장 저렴하게 필요한 것들만 심플하게 들이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손바닥만 한 사무실이라도 하루에 머무르는 시간을 생각해보고 그 공간에서 필요한 것들을 적어나가니 물건의 리스트는 노션(notion) 한 페이지를 금세 가득 채웠다.
책상, 의자, 컴퓨터, 냉장고, 전자레인지, 선반, 테이블, 멀티탭.... 뭐 쓰레기봉투나 탕비실 수세미 같은 것들까지 하면 자잘하고 수많은 구매목록에 압박을 받으며 합리적 소비를 위해 찾은 곳은 '당근마켓'
전에는 약간 재미? 눈팅?으로 들어가 이런 것도 파는구나 싶었던 당근마켓에서 어느 사이 나는 내가 구매해야 할 목록을 물건별로 알림 설정하고 구매자들의 거리를 살피며 귀찮음이라는 감정은 얇아질 지갑 앞에 전혀 작동하지 않는 가성비 벳지 콜렉터가 되어있었다.
책상을 나눔 한다고 해서 숨도안 쉬고 메시지를 남겼다.
"오~ 나이스!!"
처음 구매하게 된 소형냉장고 이어서 전자레인지 그리고 책상과 휴식을 위한 간이 의자 등등 이런 날 보며 딸내미는 요새 나갔다 들어오는 나를 만나면 "당근 하고 왔어?"라고 물어보는 상황 하지만 돈도 아끼고 조금의 귀찮음으로 채워질 줄 알았던 공간에 취향이 사라져 가는 걸 보며 약간의 뿌듯함 반대편의 억누르고 (아무래도 스스로와 타협하며) 구매한 제품에서 내 공간을 향한 욕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물리적으로 채워야 하는 것보다 일을 받을 수 있게 준비하는 업무가 너무 바빠 더 이상 당근으로 사무실 물건을 알아보지 않는다. 그 시간에 업무를 조금 더 하자... 라며.
분명 귀찮음이 크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 어색하게 인사하고 송금하는 행위가 어색해서 그렇지 '당근마켓'은 훌륭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색함과 귀찮음으로 저렴하게 물건을 구매하는.
그리고 어느 센가 당근으로 물건을 팔고 있는 나의 모습도 발견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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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쿠팡 같은 곳에서 원하는 물건을 편하게 시키고 주문한 제품을 문 앞에서 받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