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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22. 2022

결국 인생에 남는 것

Photo by Emmanual Thomas on Unsplash


결국 인생에서 남는 건 내가 소중히 여긴 가장 작은 것들인 것 같다. 어릴 적, 새벽 늦게까지 책이나 영화를 보던 시절, 내 곁에 남아 있던 강아지의 눈빛과 온기. 여동생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가던 개나리 핀 거리. 연애 시절, 아내와 수박 하나 사서 나눠 먹으며 늦은 밤까지 방에서 놀던 기억. 삶에 남는 건, 결국 그런 것들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가치를 부여한 소중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소중한 것은, 내가 그 속에서 진심으로 좋아하여 마음 깊이 기억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그밖의 인생에서의 일들은 다 그것을 지키기 위한 방편들에 가깝다. 내가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결국 그것 때문에 인간은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홀로 글쓰는 밤이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아침이다. 누군가에게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느 언덕이고, 바다이며, 그림 그리는 시간이다. 삶의 초점이 그런 것들에 놓여 있다면, 삶을 너무 멀리 떠내려 보내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게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다. 때론 너무 오랫동안 잊어버린 나머지, 자신이 왜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심지어 기이한 욕망의 노예 같은 것이 되어, 자기가 진짜 소중히 여기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미친듯이 달려가기도 한다. 그래서 삶에서 핵심적인 태도 중 하나는, 소중한 것에 대한 초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나머지는 부차적이고, 2순위 이하의 것들이다. 1순위는 내게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것이고, 너무 작거나 너무 가까이 있거나 아예 보이지도 않을 수 있다. 나의 마음이 머무는 곳, 그래서 내가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에 삶이 있다. 


결국, 시대나 사회가 아무리 어지럽고 혼란스러워도, 우리는 작은 것들에 기대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잊지 말아야 겠지만, 삶은 사실 바깥쪽 보다는 안쪽 가까운 곳에 있다. 이를테면, 삶은 전쟁통에서 지하에 숨어 레고 한조각에 눈을 반짝이며 공룡들이 사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이 있는 그런 언저리에 있는 무엇이다. 그 삶의 초점을 잃지 않는 전제 하에, 다른 모든 현실이나 욕망에 관해서 말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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