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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27. 2022

일의 의미

Photo by Marten Bjork on Unsplash



사람은 일과 사람으로 사는 것 같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할 때는, 일단 일을 하러 가야한다. 일을 한다는 것은 나를 사회 속으로 매일 밀어넣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역할을 부여받고, 사회적 정체성을 얻으며, 나의 쓸모가 있는 것으로 부단히 나아가는 과정이다. 일은 돈벌이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를 새겨넣는 행위다. 


사람은 그냥 돈만 많으면, 방안에서 가만히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 맺고, 그 가운데 어디쯤 자기 자신을 놓아두며, 계속 타인에게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홀로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단지 타인에게로 '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글 쓰면서 간접적으로 타인과 관계 맺거나, 책을 읽으며 대화하고, 온라인으로 덜 선명하게 관계 맺고자 할 뿐, 타인을 향한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 타인에게로 나아감, 곁에 있는 사람에게 기대고, 대화를 나누고, 끊임없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에게로 다가가는 그 일이 곧 사람을 살린다. 머물러 있다는 건 자기 안에 머무르는 것이고, 벗어나서 나아간다는 건 타인에게로 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쉼 없는 나아감이 우리를 고여버린 썩은 웅덩이가 되지 않게 한다.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왜소한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게 한다. 그 나아감이 인간을 살게 한다. 


일의 본질도 그런 나아감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하면 할수록, 일로 타인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사회 속에서 필수적인 한 부분이 되고, 사람과 사람이 엮인 어느 지점에서 자기만의 역할을 하게 된다. 서로 돕거나 경쟁하면서 더 선명한 정체성을 얻게 된다. 그러다 보면, 홀로 골방에서 쌓이는 문제들이 씻겨 나간다. 


물론, 일에 따라서는 방안에서 홀로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방안에서 홀로 하는 일도 그 일 자체로 타인과 연결된다. 가령, 글을 써서 작품을 쓰게 되면,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도 훨씬 더 광범위한 사람들과 더 솔직하고 감정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만든 작품에 울고 웃는 사람들로부터 진심어린 편지를 받고, 나도 내 마음을 쏟아내며 깊은 소통을 이어갈 수 있기도 하다. 그 또한 타인에게로 가는 '일'이다. 


나는 요즘 매일 일로 나아가는 것에 관해 생각한다. 마치 여행을 떠나듯, 끝없는 지평선을 향해 출발하듯, 매일 일터로 떠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살리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물론, 적당한 휴식도 중요하지만, 휴식이 너무 길어져 일의 세계로부터 떠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일하고 나아가는 것, 계속하여 저 타인에게로 걸어나가는 것, 그것이 삶의 본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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