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 내가 읽은 책의 팔할은 문학이었다. 자기계발서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고, 나머지는 철학서 정도를 읽었다. 그러니 나는 적어도 책으로 일이나 공부 능력을 계발하는 법이라든지, 성공하는 법,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거나 사회생활을 잘하는 법 같은걸 직접 배운 적이 없었다. 내가 배운 게 있다면, 나도 모르게 다 문학에서 배운 것들이다.
나는 스스로 사회생활을 매우 잘한다든지, 인맥 관리에 탁월하다든지, 일 능력이 뛰어나다든지, 사회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그 모든 것에 대단히 미숙하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내게 어울리는 삶 정도는 나름대로 잘 따라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문학은 바로 그런 삶, 내게 어울리는 삶 정도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수천권쯤 되는 문학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매우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셈이 된다.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불안, 공포, 질투, 분노, 기쁨 같은 감정들이 어느 때 어떻게 작동하고 해소되는지를 계속하여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그만큼 나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예민해지고, 관계의 기류에 흐르는 것들을 어느 정도 느끼는 감각이 발달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문학에 기대어 사람의 마음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면으로는, 문학 속 인물들의 인생을 보면서 인생의 성취, 좌절, 실패, 탐욕 같은 흥망성쇠에 관해 수백번은 경험한 듯하다. 인물들의 시작과 끝을 깊이 공감하며 읽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몇몇 인물들의 삶은 진짜로 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영상 장르와 다른 문학의 특이점은, 그 모든 과정을 읽는 사람 스스로 '상상'한다는 점이다. 자기의 상상력으로, 자기의 상상 속에서, 마치 자기의 일처럼, 자기의 꿈처럼 그것들을 경험한다. 그래서 진짜 그 삶들을 살아버린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그 중에서 내게 어울리는 삶이 무엇인지도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수많은 인물들 중 어느 쪽의 인물에 가장 가까운지, 혹은 그러고 싶은지가 청춘의 화두였다. 그 중에서 내게도 가장 멋져 보이는 인물들이나 근사해 보이는 인물들이 있었고, 나는 자연스레 그들을 닮고 싶어 했다. 아마 지금의 나는, 그렇게 많은 책을 읽기 전이었던 스무살과 분명히 다른 사람일텐데, 책 속의 수많은 인물들을 따라 나를 조금씩 바꿔왔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문학에서 받은 영향이랄 것은 다양하겠지만, 결국 핵심을 꼽자면, 나 자신에 대한 예민함을 기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안의 무수한 감정, 욕망, 생각들을 계속하여 더 많이, 자주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소하게 지나쳤을 두려움도 문학 안에서 증폭되어 서술되는 걸 보면서, 내 안의 두려움들을 계속 명료하게 마주했을 것이다. 내 안의 작은 욕망들 하나까지도 수많은 인물들에 투영된 모습 속에서 그 욕망의 미래까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청춘의 학습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계속하여 잘게 쪼개어, 초단위로 변하는 내 안의 감정이나 욕망이나 변화에 관하여, 비록 언제나 다 알 수는 없을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잘 알게 되어가는 그런 학습이 문학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 같다. 말하자면, 그런 더 자주 '깨어 있음'이나 '직시'의 연습 같은 것이 삶의 모든 것에서 내게 어울리는 것들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던 듯하다. 나는 여전히 정확한 삶으로 가기 위하여, 더 자주 깨어있을 필요를 느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문학의 필요에 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