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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21. 2022

문학의 필요

Photo by Iñaki del Olmo on Unsplash


청년 시절, 내가 읽은 책의 팔할은 문학이었다. 자기계발서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고, 나머지는 철학서 정도를 읽었다. 그러니 나는 적어도 책으로 일이나 공부 능력을 계발하는 법이라든지, 성공하는 법,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거나 사회생활을 잘하는 법 같은걸 직접 배운 적이 없었다. 내가 배운 게 있다면, 나도 모르게 다 문학에서 배운 것들이다. 

나는 스스로 사회생활을 매우 잘한다든지, 인맥 관리에 탁월하다든지, 일 능력이 뛰어나다든지, 사회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그 모든 것에 대단히 미숙하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내게 어울리는 삶 정도는 나름대로 잘 따라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문학은 바로 그런 삶, 내게 어울리는 삶 정도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수천권쯤 되는 문학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매우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셈이 된다.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불안, 공포, 질투, 분노, 기쁨 같은 감정들이 어느 때 어떻게 작동하고 해소되는지를 계속하여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그만큼 나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예민해지고, 관계의 기류에 흐르는 것들을 어느 정도 느끼는 감각이 발달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문학에 기대어 사람의 마음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면으로는, 문학 속 인물들의 인생을 보면서 인생의 성취, 좌절, 실패, 탐욕 같은 흥망성쇠에 관해 수백번은 경험한 듯하다. 인물들의 시작과 끝을 깊이 공감하며 읽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몇몇 인물들의 삶은 진짜로 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영상 장르와 다른 문학의 특이점은, 그 모든 과정을 읽는 사람 스스로 '상상'한다는 점이다. 자기의 상상력으로, 자기의 상상 속에서, 마치 자기의 일처럼, 자기의 꿈처럼 그것들을 경험한다. 그래서 진짜 그 삶들을 살아버린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그 중에서 내게 어울리는 삶이 무엇인지도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수많은 인물들 중 어느 쪽의 인물에 가장 가까운지, 혹은 그러고 싶은지가 청춘의 화두였다. 그 중에서 내게도 가장 멋져 보이는 인물들이나 근사해 보이는 인물들이 있었고, 나는 자연스레 그들을 닮고 싶어 했다. 아마 지금의 나는, 그렇게 많은 책을 읽기 전이었던 스무살과 분명히 다른 사람일텐데, 책 속의 수많은 인물들을 따라 나를 조금씩 바꿔왔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문학에서 받은 영향이랄 것은 다양하겠지만, 결국 핵심을 꼽자면, 나 자신에 대한 예민함을 기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안의 무수한 감정, 욕망, 생각들을 계속하여 더 많이, 자주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소하게 지나쳤을 두려움도 문학 안에서 증폭되어 서술되는 걸 보면서, 내 안의 두려움들을 계속 명료하게 마주했을 것이다. 내 안의 작은 욕망들 하나까지도 수많은 인물들에 투영된 모습 속에서 그 욕망의 미래까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청춘의 학습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계속하여 잘게 쪼개어, 초단위로 변하는 내 안의 감정이나 욕망이나 변화에 관하여, 비록 언제나 다 알 수는 없을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잘 알게 되어가는 그런 학습이 문학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 같다. 말하자면, 그런 더 자주 '깨어 있음'이나 '직시'의 연습 같은 것이 삶의 모든 것에서 내게 어울리는 것들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던 듯하다. 나는 여전히 정확한 삶으로 가기 위하여, 더 자주 깨어있을 필요를 느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문학의 필요에 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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