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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19. 2022

로스쿨 수험생활에서 배운 것들

Photo by Tingey Injury Law Firm on Unsplash


지금 생각해보면, 수험생활은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매우 절실하게 알려준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시험 합격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온갖 실험과 노력을 하는 자기계발 로봇이 되어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와중에도 침범하는 온갖 감정과 의문, 두려움 속에서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를 절실하게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오로지 스스로의 판단과 느낌으로 그 시절을 건너야 했다. 


이를테면, 그 시절 나는 절박하게 의지력을 분산시키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루 중 쓸 수 있는 의지력은 무한대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에는 '쉬면서' 무언가를 해야 했다. 가령, 하루 중 집중해서 공부하는 시간이 대여섯 시간 있으면, 나머지 시간에는 느슨하게 공부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매우 집중에서 하는 시간이 있으면, 적당히 쉬듯이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어야만 했다. 인간이란, 그렇게 자기 에너지를 조율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또다른 면으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먼 곳 보다는 가까이에 있다는 걸 배웠다. 열심히 애쓰고 공부하고 일하는 건, 여기를 두고 어디 멀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라는 걸 느꼈다. 공부가 끝난 늦은 저녁, 가족과 만나 잠깐 먹는 저녁과 함께하는 산책 같은 것이 너무 소중한 나머지, 그 순간에는 그것이 행복의 전부나 다름없다고 느끼곤 했다. 행복의 기술은 멀리 떠나는 것보다는, 가까운 데 머무르는 기술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그 시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게 글을 쓰기도 했다. 그 이유는 글쓰기만이, 내가 나 자신을 어떤 굳어버린 점토처럼 되는 걸 막아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공부에 뒤덮여 등수나 성적, 합격, 경쟁 밖에 모르는 괴물 로봇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계속 따라다녔다. 글쓰기는 내게 '수험생활' 즉 어떤 '현실적인 분투' 외에도 다른 것이 남아 있다는 걸 끊임없이 환기시켜 주었다. 아무리 고시생 시절이라도, 그 속에도 인간관계, 사랑, 우정, 작은 기쁨들, 분노와 위안, 삶을 좋아하는 방식들 같은 게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당시에는 사실 말못할 여러 사정들도 내게 덮쳐 왔었는데, 그럴수록 스스로 더 마음이 굳건해지는 걸 느끼기도 했다. 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여러 인생에서의 경험들과 나 자신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기술을 배웠고, 그 분리의 기술이 내가 매번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내게 최우선순위,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일은, 마지막 해의 공부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에게 돌아가 가정을 지키는 일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부차적이었고, 그래서 분리시킬 수 있는 결단을 해야했다. 그 시절, 나는 분리와 결단을 배웠다. 


요즘은 그 시절만큼 절박하게 살아가고 있진 않지만, 그 시절을 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이를테면, 의지력의 리듬을 적절히 활용하기, 가까운 것에 대한 초점을 잃지 않기, 글쓰기를 놓지 않기, 분리와 결단에 엄격해지기 등을 계속 삶의 기술들로 남겨두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것들이 삶을 만들고, 삶을 지키게 한다는 것을 그저 온 경험으로 배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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