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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13. 2022

겸손해야 함을 깨닫게 된 시간

Photo by Joice Kelly on Unsplash


서른 이후 삶은 계속 겸손해야 함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그 전까지는, 아이를 키운다는 게 그다지 대단하거나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하루하루를 함께 해보니, 나보다 앞서간 모든 부모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게 들었다. 특히, 정말 많은 순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다. 아이를 건강하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키워낸다는 것이 결코 쉽게 보아선 안될 일이라는 걸 느꼈다. 


취업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이십대 시절, 취업 같은 건 그리 대단한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서른 무렵, 서류 단계에서부터 줄줄이 떨어져보니, 세상이 만만치 않았다는 걸 알았다. 전문대학원은 아무나 다 가는 줄 알았는데, 한 번 떨어지고 재수를 해서야 갈 수 있었다. 남들이 대체로 거쳐가는 것들은 멀리서 볼 때는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니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수험생활도 그랬다.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오만함 같은 게 있어서, 나는 남들보다 쉽게 수험 공부도 잘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말그대로 '방심'했던 첫 학년의 성적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인생을 걸듯이 밤낮없이 몸과 정신을 갈아넣고 애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모래를 삽으로 퍼서 산을 만들듯이 그렇게 간신히 성적을 올려 놓아도, 조금만 방심한 과목은 바로 성적이 떨어졌다. 하루도, 한 시간도 허투루 대해서는 안되었다. 내가 잘난 것 하나 없다고 믿고 애써야만 했다. 


직장을 다니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첫 직장에서도 내가 할 일은 모든 사람한테서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는 것이었다. 특히,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들은 다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몇 달 더 일찍 들어온, 나보다 몇 살 어린 동료 변호사들에게 거의 매일같이 배웠다. 내가 잘났다고 믿고 떠들 구석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매일 배우면서, 그저 내 자리에 맞는 역할 정도 간신히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정말 다행이라 믿고 애썼다. 


글을 쓰다보면, 종종 깊이 공감해주는 분들로부터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글을 써서 해내는 일보다, 세상에 더 존경받아 마땅한 삶들이 많다고 느낀다. 그래서 글쓰는 일로 얻는 어떤 인정의 말들이 뿌듯함 보다 부끄러움이 더 클 때도 있다. 나는 그저 글을 쓰지만, 아마 당신은 그보다 더 긴 세월동안, 더 어렵고 존경받을 만한 애씀을 실현해왔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는 아직 더 많은 세월을 증명해야 한다. 책임감 있게 앞에 놓인 세월을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이제서야 나는 조금 삶을 알 것 같다고 느낀다. 그전까지 나는 삶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 사실, 이십대가 끝날 무렵에는 그런 상태에 약간 염증이 나서, 삶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렇게 서른 이후, 나는 삶에 뛰어들었고, 삶에 더 깊이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삶을 건너간 사람들의 주름과 세월에 존경심이 들고, 겸손함을 가지게 된다. 오만했던 청년 시절이 저물고, 내가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삶이랄 것을 보다 깊이 알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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