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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05. 2018

N포세대와 욜로(YOLO)···포기에서 선택으로

청춘에 관한 담론

N포세대에 대한 담론이 가시기 무섭게, 욜로(YOLO)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연애, 출산,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청춘을 묘사한 ‘3포 세대’ 이야기는 머지않아 수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N포’로 확장됐다. 이에 ‘헬조선’이나 ‘수저계급론’ 같은 담론들이 가세하면서, 한국 청년들의 절망을 묘사하는 유행이 이어졌다. 실제로 청년 실업률은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고, 경제적 문제로 결혼을 늦추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일이 흔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태도는 묘하게 변하고 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기존의 억압적이었던 라이프스타일은 새로운 삶의 형태 앞에서 힘을 잃고 있다. 결혼이나 출산, 안정적인 직장의 포기는 ‘수동적인 체념’에서 ‘적극적인 선택’으로 변모하고 있다.


젊은세대는 삶의 정답 앞에서 절망하다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있다. 소위 ‘결혼적령기’라 불리는 시점에 결혼하고, 출산과 육아를 하고, 아이 뒷바라지를 하다 은퇴에 이르는 삶의 과정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이해한다.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부터 <효리네 민박>에 이르기까지 혼자 사는 삶을 즐기는 싱글족,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비혼족, 결혼하되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DINK)족의 삶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미디어에 비친 연예인들의 삶에는 ‘자본’이라는 하부구조가 뒷받침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색다른’ 삶은 기존의 억압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굴복시킨다는 점에서 편견을 몰아내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삶이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단 한 종류밖에 없었다면, 새로운 세대는 삶을 쇼핑하듯 고르기를 원한다.


자본의 억압과 라이프스타일의 해방은 궤를 같이 한다. 부르조아는 경제권을 쥐고 귀족 중심의 기존 체제를 무너뜨렸다.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게 되면서, 여성 권리의 신장이 함께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현대 한국에서, ‘돈’을 가진 일부 유명인들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함에 따라 ‘정답사회’로 대변되던 기존의 선입관에 급격히 금이 가고 있다. 젊은세대는 원래의 라이프스타일(4인가족)에 도달하지 못함에 절망하다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라이프스타일의 수직적 구조가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깨어지는 ‘아이 낳는 삶’의 불패신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농촌 경제에서는 대가족이 생존과 행복에 유리했다. 아이들은 열 살이 되기도 전부터 노동에 투입됐고,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았다. 노동력이 부족하면 굶주리고 불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되면서는 핵가족이 알맞은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도시에 살면서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아이 둘을 키우는 가부장적 구조가 이에 결부됐다.


근래 대한민국에서 아이 둘은 ‘딱 알맞은 삶’의 행복을 보장하기에는 다소 버거워 보인다. 살인적인 사교육비와 주거비, 야근과 경력단절 등을 모두 고려해, 사람들은 자기 삶에서 최선을 택하고자 한다. 아이 하나 낳는 게 대세가 됐고, 안 낳고 사는 것도 훌륭한 선택지가 됐다.


기존의 ‘아이 낳는 삶’의 불패 신화는 확실히 깨지고 있다. 저출산은 대한민국의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저출산이 단순히 ‘살림살이가 팍팍’해서 퍼지고 있는 현상이라 볼 수는 없다.


주요 선진국의 출산율은 꾸준히 감소돼 왔고, 그나마 선진국의 출산율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외부 이민자들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에서, 출산이 선택의 문제로 돌아서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이야기가 가장 잘 담겨 있는 책 중 하나가 노명우 교수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다. 같이 사는 사람은 ‘역할밀도’의 비중이 높아지고, 혼자 사는 사람은 ‘자기밀도’의 비중이 높아진다. 역할밀도에는 소속감의 행복이 있고, 자기밀도에는 자유의 행복이 있다. 반대로, 역할밀도에는 책임의 부담이 있고, 자기밀도에는 고독의 부담이 있다. 각자의 기질과 가치관에 맞게 삶을 고르면 될 뿐이다.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택하든 각각의 삶에는 저마다의 행복이나 고통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고통을 호소하고, 행복을 증언한다. 그러한 선택지들을 측량하여 줄 세우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아이를 낳아야 행복한 사람이 있고, 본인의 삶을 더 전면적으로 살아야 행복한 사람이 있다.


대중문화를 전파하는 주요 미디어에서도 아이 낳는 삶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육아 프로그램’과 혼자 혹은 둘의 삶을 찬양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프로그램’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 시대는 라이프스타일의 수평적 공존을 향한 거대한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를 읽는 법


욜로는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점에 둔 소비 성향으로 이해된다. 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한번 뿐인 인생에서 현재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이러한 경향은 아이를 위한 희생적 삶이 아닌, 본인의 삶을 즐기는 싱글, 비혼, 딩크의 라이프스타일로 이어진다. 기존에 이 유행은 미래를 포기한 젊은 세대의 절망적인 성향으로 읽혔다.


어차피 돈을 모아봐야 서울에 아파트 한 채도 살 수도 없으니, 현재라도 즐기겠다는 자포자기적 경향으로 이해됐던 것이다. 기성세대였다면 한 푼 두 푼 모아 노잣돈을 마련해 결혼과 육아를 대비했겠지만, 젊은세대는 여행을 떠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취미 생활을 즐기려고 한다.


‘절망’이라는 렌즈는 모든 것을 읽기 쉽게 만든다. 하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삶을 살면서, 젊은세대가 절망만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로운 세대는 소중한 것이 미래에 있는 자식 뒷바라지가 아니라, 현재에서 누리는 기쁨과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삶에서 어떤 방향으로의 포기는, 다른 방향으로의 희망을 가져오기도 한다.


물론, 욜로에 긍정적인 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욜로(YOLO) 좇다 골로(GOLO) 간다’는 말은 지나친 소비 지향의 삶을 지적하고 있다. 핫플레이스를 위주로 하는 값비싼 카페나 레스토랑은 과시 욕망과 뒤섞이면서, SNS의 유행을 좇고 자기를 전시하는 ‘불나방적’ 소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단 한 번뿐인 삶을 소중히 하고, 현재에서 기쁨을 누려라는 명제를 오직 ‘소비’로만 받아들인 부작용이다. 소비의 쾌락은 달콤하지만 짧고 허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욜로 담론이 포기에서 선택으로, 청춘이 삶의 수동적 객체에서 능동적 주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삶을 ‘소비’보다는 ‘생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기존의 선입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지정해주었다. 삶은 매시기마다의 미션을 완수하면 되는 것이었다. 선입관으로부터의 자유는 우리를 정해진 미션에서 해방시키는 대신, 스스로 자기만의 삶을 건설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준다.


쉬운 삶은 없다. 그럼에도 출산 대신 여행을, 강남 대신 제주도를, 육아 대신 다양한 취미를 선택하는 삶은 그 자체로 옳다. 나와 닮은 아이를 낳고 어엿한 성인으로 키워내는 일이 옳듯이 말이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향한 열망은 이전과는 다른 문화와 경제 영역을 형성하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 사회는 이전의 사회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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