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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01. 2021

한국사회의 피난민적인 정서


우리 사회의 주요한 정서에는 "남들이 하는 거 다 따라가지 않으면 나만 손해보고 망한다."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남들이 집 살 때 나도 서둘러 사지 않으면 나만 루저가 되고, 남들이 도전하는 직업이나 수험생활을 하지 않으면 결국 나만 인생 패배자가 되고, 남들이 하는 유튜브 안 하면 나만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 된다는 식의 인식이 매우 강하게 박혀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흐름은 넋 놓고 가만히 있으면 모든 걸 다 잃게 되므로, 서둘러, 빨리 빨리,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놓은 듯하다. 


그 최초의 근원은 어쩌면 '피난민적인 정서'에 있을지도 모른다. 남들 다 부산으로 피난갈 때, 가만히 있다가 가족 잃고, 재산 잃은 시절의 이야기가 구전되듯이 핏줄 속에 이어져 내려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후에도 워낙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보니, 다 같이 옆에서 밥 굶던 피난민이었던 사람들 중에, 땅 하나 잘 사두었다가 벼락부자가 되는 경우들이 워낙 많았고,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어 이어져내려왔던 게 아닐까 싶다. 공교롭게도, 지금까지도 그런 일들은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창조성이나 통찰력, 노력이 훌륭해서 성공했다기 보다는, 그저 어떤 흐름에 잽싸게, 약삭 빠르게 올라탔다는 이유만으로 '격차'라는 게 급격하게 벌어지는 일들이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인생이 사회 속에서의 어떤 재빠른 흐름 속에 올라타듯이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감각이 세계적으로 그렇게 일상적인 감각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내가 만나 이야기나누곤 했던 어느 외국인들의 인식은 우리 사회의 사람들과는 다른 데가 있는 듯했다. 매일 무엇이든 급격하게 쫓아가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고, 뉴스를 찾아보고, SNS에 몰두하고, 카페에 가입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경쟁하고, 뒤처지는 일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결과적으로 세상 자체를 신뢰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현상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감각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그보다 인류의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삶이란 다소 머물러 있어도 되는 것이고, 세상이란 항상 어딘가로 급격하게 흘러가는 폭포수 같기 보다는, 꽤나 느긋하기도 한 것이어서, 그저 살아왔던 대로, 이대로 계속 살아가도 썩 나쁘지 않고, 갑자기 내가 서있는 땅이 무너진다든가, 하늘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믿는 쪽이 아닐까 싶다. 그에 반해, 우리 사회는 일찍이 "소용돌이" 같은 사회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언제나 급격하게 바뀌었고, 수많은 탈락자들과 죽음들을 만들어내었고, 그 와중에 요동치는 격차들을 낳으며 구성원 전체에 불안과 강박을 심어주는 쪽으로 작동해왔던 게 아닌가 한다. 나아가,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다보니, 어느덧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면서 더 극심한 격류를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열심히 세상 흐름이라는 것을 잘 쫓아가면서 살아낸 사람들만이 늘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 강박적인 흐름이라는 것도 어느 시점까지는 자발적인 행복을 위한 것인지 몰라도, 또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그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이 이끌려가는 강박적인 상태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 같고 말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쫓아가되, 어느 정도는 느긋하게 머물 구석을 만들어두는 게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어딘가로 가지 않고, 어딘가로 휩쓸려가지 않고, 그 무엇을 쫓아가지 않는 측면을 인생에 필사적으로 만들어두어야만, 오히려 그 삶에 진정으로 의미있는 자국들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삶에서의 작은 목표라는 게 있다면, 그런 순간들, 시간들, 장소들을 필사적으로 잃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몸의 반쯤은 억지로 휩쓸려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머물 수 있는 어느 시공간의 굳건함이라는 것을 지켜야만 한다고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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