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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12. 2022

적극적으로 끝을 상상하기

Photo by CHUTTERSNAP on Unsplash


삶이 견디기 힘들 때는, 삶을 자꾸 멀리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지금 나의 괴로움이 무엇도 영속적이지 않다는 걸 받아들일 여지가 생긴다. 내 삶에 있는 고통, 어려움, 괴로움 같은 것들이 대부분 일시적인 것이어서, 사라질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걸 '상상' 속에서나마 받아들일 수 있다. 끝이 있다고 믿을 수 있다면, 삶은 대개 견딜만한 게 된다. 

그래서 삶의 한 기술은 '적극적으로 끝을 상상'하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끝에 대한 상상'이 실제로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끝이 있다고 상상하게 되면, 끝을 준비하게 된다. 수험생활이나 직장생활, 결혼생활이 괴롭다면 언젠가 끝을 상상하며 그 이후를 준비할 수 있다. 그러면 수동적인 괴로움의 시간이 능동적인 준비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끝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준비를 예정하고, 삶의 또 다른 돌파구가 되어준다. 인간이 희망을 통해 먹고 사는 존재라면, 그 희망은 대개 '끝'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떠나는 것, 이 생활을 끝내는 것, 이 관계를 종결시키면서 동시에 다가오는 것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희망은 끝에 대한 상상이자, 단절을 준비하는 일이며, 실제로 종료에 대한 용기이다. 

그런데 삶이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끝과 단절, 종료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우리 삶은 더 거대한 차원에서는 계속 이어진다. 직장을 3년 다니고 그만두는 것은 그 직장과는 영원히 끝이지만, 내 삶은 나만의 서사로 이어진다. 나는 또 다른 직장으로 도약하거나 커리어를 확장시키면서 '계속' 나의 스토리를 써간다. 그러니까 끝에 대한 상상은 동시에 지속에 대한 상상이기도 하다. 삶이 책이라면, 한 장이나 부의 끝을 상상하면서, 동시에 책 전체의 계속을 상상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생에서의 실패란, 각 단계 어느 하나에서 실패하는 걸 주로 의미했다. 그래서 이혼도 인생의 실패이고, 퇴사도 인생의 실패이며, 시험 낙방도 인생의 실패라는 관념이 팽배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각각의 실패는 각 스테이지에서의 실패 또는 끝일 뿐, 인생 전체의 실패는 아니라는 관념이 점점 확고해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지속하는 삶, 계속되는 서사, 이어지는 스토리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퍼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가정, 직장, 학생 신분 같은 현실의 집단적 규정은 우리를 '완전히' 예속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삶에 예속되어 있다. 우리가 이야기 쓰기 나름인 삶, 우리가 창작해가기 나름인 삶에 속해 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는 상상과 창작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 여정은 삶이 이어지는 한, 끝이 없다. 우리는 계속 끝내고, 계속 재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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