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Oct 11. 2022

누구나 자책감 때문에 울 때가 있다

Photo by Mojtaba Ravanbakhsh on Unsplash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자책감에 울 때가 있다.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한 것, 잘못된 선택을 한 것, 스스로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 때문에 운다. 그저 내가 나를 이겼으면 되는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한스러워서 그렇게 운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 가장 이기기 어려운 건 원래 자기 자신이 아닐까 싶다. 


삶이란, 기이하게도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는 일로 거의 수렴된다. 내가 내 감정이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었다면, 내 안의 욕망이나 유혹을 잘 억누를 수 있었다면, 내 삶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만 같다. 내가 나를 이기기만 했다면, 나는 아마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 아이는 잘 울지 않는데, 엉엉 울 때는 주로 억울할 때인 것 같다. 실수로 잘못을 하거나, 자기는 나름대로 규칙을 지키려고 애썼는데 지키지 못하거나, 자기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 충동적으로 한 잘못이 있을 때, 엉엉 운다. 자신은 잘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혼날 만한 건 알지만 나름대로 애썼다는 마음을 알리고 싶은데, 그걸 표현하지 못해 우는 것 같다. 나름대로 애썼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한참을 울먹이곤 하는 것 같다. 


사실, 어른도 아이와 다르지 않아서 나름대로 애썼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지고 말았을 때, 엉엉 울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역시 진심은 아이와 다르지 않게, 누군가 나의 애씀을 알아줬으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잘하고 싶었는데,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 알아주거나 안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자책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운다. 완벽을 요구받는 내가 가엾어서 울게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아름답지만, 나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 아름답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랄 게 있다. 그 애씀, 인간으로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애씀, 신이 아니기에 완전함을 실현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애쓸 수 밖에 없는 인간성,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실수로라도 엄마나 아빠를 아프게 때리지 않으려 세심하게 애쓰는 아이의 마음처럼 말이다. 그러다 실수로 세게 때려서 엄마나 아빠가 '악!' 소리를 지르면, 먼저 엉엉 울어버리는 아이의 마음이란, 어딘지 예쁜 데가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울어야 한다는, 그런 거창한 요구를 받곤 하지만, 그 전에 자기 자신을 위해 울어도 좋을 듯하다. 울고 나면, 그 애쓰는 마음을 또 지켜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우는 사람들이 지지 않고 그 마음을 지켜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가엾게 여기고, 사랑하며, 그를 위해 울어주는 일에 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기복과 싸우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