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그것과 싸우는 법을 알고 있다. 감정을 달래기 위해 가장 좋은 건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불안하고 불길하거나 슬픈 마음이 엄습하더라도, 그럴수록 해야할 일을 찾아서 해나가다 보면, 또 다른 감정이 찾아온다. 그러면, 삶에는 대략 두 가지 흐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나는 요동치는 바다와 같은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과 무관하게 직선으로 나아가는 힘 같은 것이다. 요동치는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 흐름을 '막는' 방법은 모른다. 슬픔이 오면 슬픔을, 불안이 오면 불안을, 압박감이 오면 압박감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감정은 감정대로 놓아두고, 나는 삶의 다른 힘에 갈아타려는 의지를 찾는다.
그 잠깐의 의지를 발휘하여, 그 직선상의 흐름에 올라타면, 감정이 어떻든 나아갈 수 있다. 가령, 누구나 그럴지 모르지만, 내게도 꽤 주기적으로 견디기 힘든 우울감 같은 것이 찾아온다. 그럴 때, 나의 일을 하고 글을 쓰다보면, 그것들이 어느덧 등 뒤로 물러나고 나는 나의 일이라는 열차에 탑승하여 나아가는 걸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순간, 정신이 맑아지고 투명해지면서 무언가 '걷혀나간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게 된다.
특히, 나는 그 이상한 바다에 빠져 있을 때, 마치 나를 바다 위로 끌어올리는 부표처럼 글쓰기를 활용한다. 내게 글쓰기는 너무 다양한 쓰임이 있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을 투명하게 하고, 나를 수면 밖으로 떠올리는 역할이야말로 내가 아주 명료하게 경험하는 글쓰기의 효용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수험생활 시절, 도무지 공부에 몰입이 되지 않거나 감정을 떨쳐내기 힘들 때, 글 한편 뚝딱 쓰고 나면, 매우 맑은 정신으로 공부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감정기복이 별로 없는 일관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내가 그 직선상의 힘 속에 있을 때 주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령, 내게 글쓰기는 나를 그런 힘 속에 집어넣는 일이기 때문에, 나의 글은 거의 그런 경향을 띄는 듯하다(반대로, 어떤 작가는 요동치는 바다 그 자체가 된 듯한 글을 쓰기도 한다). 혹은 당연하게도, 사회 속에서 나는 나의 바다를 가능한 한 내 갑옷 안에 가둬둔 채로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나의 삶이란, 결국 내 안의 기질과 싸우는 일 밖에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가령, 내 안의 산만함, 내 안의 과대망상, 내 안의 감정기복 같은 것들과 싸우는 일을 매일 하는 것으로, 어느덧 내 삶의 지도랄 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내 안의 산만함을 이기고 싶어서 글을 쓰고, 내 안의 과대망상을 잠재우고 싶어서 글을 쓰고, 내 안의 감정기복을 다스리기 위해 글을 쓰다보니, 매일 글들이 쌓였고, 책들이 되었고, 내 삶이 되기도 한 셈인 것이다. 때로는 정말이지, 있는 것은 내면의 폭풍이나 투쟁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튼, 삶이라는 게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그 바다 자체를 누리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어떤 일관되거나 수직적인 힘으로 나아가고 구축하는 측면 또한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나는 늘 전자에 빠져 있지만, 후자의 힘의 끈 같은 걸 찾아 붙잡으려 애쓰며 삶을 지어나간다. 이 삶을 지어나가는 힘을 매일 붙잡고자, 또 매일 글을 쓴다. 이 기묘한 투쟁이 내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