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Oct 17. 2022

불행에서 행복으로  걸어가기

Photo by Madison Oren on Unsplash


불행은 주로 나의 자아에 집착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면, 행복은 나의 자아에서 시선을 돌리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자아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삶에는 너무 많은 불행들이 끝없이 솟아난다. 내 자아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열등감, 내 자아가 모욕당했다는 수치심, 내 자아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느끼는 박탈감, 소외감, 욕구 불만, 적개심 같은 것들이 자아를 쥐어짤수록 솟아 나온다. 

반면, 행복은 나에게 몰두하는 상태에서 '살짝' 벗어날 때 찾아온다. 나를 잠시 놓아버린 채 나선 공원에서의 산책에서, 구름의 모양과 나뭇잎의 형태들이 눈에 들어오고, 깔깔 웃는 사람들과 나무를 긁어대는 고양이를 마주하는 어느 순간, 우리에겐 행복감이랄 게 살짝 찾아온다. 시선을 내 자아가 아닌 다른 것으로 돌리는 순간, 거기 행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 어늑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내 시선을 그들의 미소로 옮기고, 그들과의 화젯거리로 마음을 옮기면서, 내 자아에 몰두하고 있는 상태를 살짝 벗어날 때, 우리는 행복을 경험한다. 내 자아에서 벗어나, 웃으며 달리는 아이를 잡으러 뛰어갈 때,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표정과 목소리에 몰입할 때, 나를 위로해주려 애쓰는 친구의 표정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치유되고 행복을 알게 된다. 

자기만의 불행에 사로잡혀 있을 때, 대개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타인과 눈을 마주치기도 부담스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닌다. 나 자신의 고통이나 상처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 바깥이 있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다. 불행한 사람은 자아라는 방에 갇혀서 그 바깥 세계를 잊고 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쨌든 창문을 열어야 한다. 시선을 옮겨야 한다. 

자아는 상처나 고통, 실패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자극이 들어올 경우, 마치 생채기의 피가 새어나가는 걸 막으려는 몸처럼 딱지를 만들어내는 데만 고도로 집중한다. 둑이 터질 때마다, 그것을 막으려고 너무 많은 힘을 써버리는 나머지, 우리가 다른 것을 쳐다볼 수도 없게 한다. 그러나 그럴 때, 진짜 필요한 일은 잠깐 터진 둑으로 물이 새어들어오게 놔두는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이다. 무릎 쯤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걸 느끼면서 말이다. 

특히, 우리가 자아에 고도로 몰입할 때, 대개 감사함을 잊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 무언가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 감정은, 자아에 고도로 몰입하는 일과 정반대편에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아에 절실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 같은 바로 그 시점에서, 가장 떠올릴 만한 건 '감사함'일지도 모른다. 이 자아의 불행 대신, 이 삶의 감사함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삶이 여기에 이른 모든 발자국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는 것이다. 삶이 움츠러든 자아를 수호하는 방어전이 아니라, 매번의 우연이나 인연의 고마움으로 이어진 여정이라는 걸 상기하는 것이다. 고마움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삶을 떠올리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극적으로 끝을 상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