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도 완벽한 행복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에게 맞는 불행의 종류가 있기 마련이다. 삶의 질이란, 완벽한 행복에 가까이 가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불행을 얼마나 잘 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감당 가능하고 견딜 만하다고 느끼는 종류의 불행이 있다. 인생의 선택이란, 바로 그런 불행을 고르는 일이다.
가령, 프리랜서나 직장인에게는 저마다의 고충 또는 불행이랄 게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나 가족을 이루어 사는 사람에게도 각자 다른 종류의 고통이나 불행이랄 게 있기 마련이다. 전업주부로 살거나 평생 일하며 사는 것에도 각자의 불행이랄 게 있다. 핵심은 그 중에서 내가 어떤 불행을 더 원하느냐는 것이고, 어떤 불행을 더 '낫게' 느끼냐는 것이다.
프리랜서에게는 대개 불안이 있지만 자유가 있고, 직장인에게는 안정이 있지만 구속이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외로울 수 있지만, 가족을 이루어 사는 사람은 억압이 클 수 있다. 어느 한 쪽의 삶에 전적인 행복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 자신이 그나마 더 견딜 만하다고 느끼는 불행을 껴안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선택에 있는 행복에 만족하면서 말이다.
때로 사람들은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가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일을 매우 놀랍게 생각한다. 그들 만큼은 '지고의 행복' 속에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자연스럽게 천국을 상상하는 성향이 있다. 그 누군가는 천국 속에 살고 있다고 반드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믿고 있는 그 삶에 뛰어 들어보면, 전혀 감당하고 싶지 않은 불행들이 널려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천국'의 다른 말로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미래의 경제적 자유 속에는 지고의 행복이 있어서, 하기 싫은 노동도 없고, 맺기 싫은 인간관계도 없이, 마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같은 상태가 있으리라고 믿는 경향이 매우 유행하고 있다. 자기계발서들은 하루하루의 소중함 보다는 천국을 향한 환상을 부추기는 데 목숨을 거는데, 바로 그 환상이 자기계발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택하게 될 미래는 결코 지고의 행복일 수는 없고, 또 다른 불행을 일부 껴안는 시간이라는 건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치 평생 고장나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우리 몸과 관계를 맺듯, 우리의 불행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종류의 불행을 택할 것인지를 인식하고, 그 불행을 껴안을 필요가 있다. 행복은 그 불행을 껴안고 난 여분의 품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능하면, 그 행복의 자리가 비교적 클 수 있는, 자기에게 맞는 그런 불행을 택하고자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와 가장 사이 좋은 불행을 찾아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