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느끼는 거의 모든 문제는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삶을 견디기 어렵다면, 그것은 감정 때문이다. 외로움, 시기심, 박탈감, 소외감, 슬픔, 우울, 권태, 갑갑함 같은 감정들이 종국적으로 '불행'을 만든다. 그러니 사실상 감정만 해결할 수 있다면, 삶에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문제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감정을 매우 정확하게 컨트롤하게 해주는 약이나 장치가 개발된다면, 인간의 문제는 상당수 해결될 법도 하다. 가령,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있어서, 그걸 누르면 외로움이 싹 사라진다고 해보자. 우리는 외로움 때문에 불행하다 느꼈지만, 그 순간부터는 전혀 불행함을 느끼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할 일을 할 것이다. 연인을 고를 때도, 외로움에 아무나 고르기 보다는, 더 괜찮은 사람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만 해결한다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사실 별 상관이 없을 수 있다. 직업도, 집도, 가족도 없더라도, 그저 야생을 헤매면서 자연인으로 사는 것이 가장 만족하는 사람, 그래서 감정적인 문제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도 그에게 그 삶을 포기하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사람이라면 응당 사회 안에서 직업도 갖고 집도 갖고 살아야지, 그러면 짐승에 불과하다, 그런 말을 하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는 그냥 그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정은 모든 삶에서 결정적이고, 그래서 누구나 자기 감정을 잘 알 필요가 있다. 돈이나 인기가 아무리 많더라도, 부정적인 감정에 못 이기면 그 삶은 불행하다. 반면, 상황이 아무리 어렵거나 열악하더라도, 감정만 잘 다스릴 수 있다면, 그 가운데에서 돌파구도 찾을 수 있고,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법도 하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핵심이 아닐까 싶다.
가령,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 감정이 내게 얼마나 의미 있는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수치심이 나의 잘못을 교정케 하고 성장시킨다면, 그 감정을 오래 간직하는 게 쓸모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냥 속만 문드러지게 한다면, 그 감정을 만든 원인을 없애버리거나, 그 감정 자체의 무쓸모함을 되새기며 제거하려고 해볼 수도 있다. 필요 있는 감정은 유지하되, 필요 없는 감정은 어떻게든 해소하고자 애써야 한다.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다면, 그 원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친구도 많고 애인도 있는데 외로움이 가시질 않는다면, 진솔한 대화가 없거나 인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령,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을 '그냥 좋아'해주는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를 우러러 봐주거나 인정해줄 존재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감정을 알고, 원인을 알고,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면서 문제적인 감정을 없애고자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고,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경우는 어떨까? 그 때 우리는 대개 분노를 하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그럴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내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건 아니므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대수롭지 않은 상황에 너무 많은 감정을 투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정한 선에서 필요 없는 감정을 차단하고, 다른 것에 대한 사랑으로 넘어가야 한다.
감정은 어느 순간 우리를 휘어잡아 마치 '모든 것'인 것처럼 속삭인다. 늪지대에 빠지듯 감정에 빠져서 출구 없이 갇혀있길 요구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감정은 역시 감정일 뿐이다. 더 중요한 건, 그 감정의 원인이나 그 감정의 쓸모다. 때로는 그런 실용주의에 따라 감정을 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