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핵심을 인정해주는 관계로 인해 강해진다. 반면, 나의 핵심이 아닌 걸 인정해주는 관계로부터는 허영심을 얻을지언정 강함을 얻을 수는 없다. 니체의 말마따나, '내가 아닌 것'으로 얻는 인정이 허영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 나인 것, 내가 진짜 가치를 부여하는 것, 내가 진짜 인정받고 싶은 바로 그것을 인정받을 때 나 자신이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정말로 인정받기를 원하지 않는 것들을 서로 인정해주며 버티는 관계들은 금방 약해지고, 허무해진다. 그런 관계는 어딘지 가짜 같은 데가 있다. 대표적으로 '타자의 것'에 불과한 것들로 인정을 채우다보면, 그 관계로부터 벗어나자마자 '텅 비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가령, 직장 동료와 서로가 얼마나 유행을 잘 따르는지, 남 부럽지 않은 소비를 하는지,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잘 사는지 깔깔대며 주고받던 이야기와 관계는, 퇴사한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내가 진짜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랄 것을 주고받은 관계는, 거의 영원히 이어질 수도 있다. 그는 내가 정말 '내 것'이라고 느끼는 나만의 감성이랄 것에 감탄해주었다. 내 감성의 소중함을 알아보고 인정해주었다. 내가 진짜 나라고 믿는 바로 그것에 적중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나는 그를 계속 찾는다. 그도 나의 고유함을 알아보고 가치있게 여기기 때문에 나를 찾는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러한 인정은 거의 영원히 기억되어 나의 힘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물론, 우리 주변의 소소한 관계들은 삶의 일부가 되고, 그 나름의 소중한 역할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에 취약하여, 그렇게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하늘과 땅 차이로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은 단순히 일상을 적당하게 유지하는 것 이상을 원하기도 한다. 그것은 진짜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점점 더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인간은 사막에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러한 진정한 나, 진짜 나의 핵심이랄 것을 인정해줄 존재를 찾아 나서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삶의 핵심에 얼마나 도달하는가, 얼마나 진짜 나 자신이 되는가, 얼마나 진정한 삶으로 걸어가는가는 그런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에 달려 있기도 하다. 나의 감성, 지성, 마음, 창조성, 통찰력, 아름다움, 열정, 천진난만함 등 무엇이 되었든 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바로 그 고유성을 알아봐줄 사람을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가 우리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할 수 있다.
때로 그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이기도 하고, 스승이나 동료이기도 하며, 독자나 제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들 중에 나의 허영심만 부풀리는 존재들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좋은 관계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 중에서 나를 강하게 하는 사람들을 해독해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헛된 허영심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 잘못된 권력욕에 빠지게 하거나, 저열한 욕망에 집착하게 할 수도 있다. 반면, 누군가는 내게 정확한 길이 되어줄 수도 있다.
우리는 강물에서 사금을 걸러내듯,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모래 사장에서 진주알을 찾듯이 그렇게 나를 진정으로 알아봐주는 사람들을 따라 자기만의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간다. 일단,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를 반드시 알아보고, 영원히 기억한다. 그는 나를 알았지,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그를 만나 나의 삶을 살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어, 라고 반드시 기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