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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예민함이 줄어가는 삶

by 정지우


세상이나 삶에 대한 예민함과는 별개로, 갈수록 타인에 대한 예민함 자체는 많이 줄어든 삶을 살아온 것 같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누군가가 행하는 일이나 누군가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어지간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게 일반적인 태도 같은 것이 되어간다. 나한테 실수나 무례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도 금방 의연하게 넘어가는 마음이 생기고, 설령 그가 나와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거나 판단하더라도, 그저 그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것일테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에는 아는 지인들이 정치적인 견해로 꽤나 다투고 또 사이가 멀어진 일이 있었는데, 그저 가능하면 타일러서 서로를 이해시키려는 나 자신을 보면서, 무언가 달라지긴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름대로의 고집을 갖고 눈앞에 있는 사람과 으르릉거리며 싸우거나, 대놓고 불편해하거나, 인간관계를 손절해버리곤 했을텐데, 이제 인간 사이의 의견 차이 따위란 아무것도 아니어서, 그냥 물 흐르는 것처럼 내버려두면 되는 것이라 느끼는 것 같다.


한편으로, 청년 시절에는 타인들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꽤나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평가하고, 잘잘못을 가리기도 했으나, 언젠가부터는 그런 일도 거의 없어져가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공적으로 내놓아진 글이나 말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옳고 그르거나 논리적인지 고민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내 곁의 이웃이나, 내 앞의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옳은지, 논리적인지, 진실에 가까운지 따져보는 일은 꽤나 오래전에 관두었다. 일상에는 치열한 싸움보다는 유머나 관대함이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제법 늘어난 것 같다. 과거에도 내가 중재자 비슷한 존재였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중재자 보다는 파이터 쪽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게 청소년이나 청년시절의 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근 몇 년을 돌아보면, 주위 사람과 거의 싸움이랄 것을 하지 않았다. 아마 다소 기분 나쁘거나 화가 난 적은 있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넘겨버린 채로, 평화로운 관계와 나날들을 쌓아왔던 듯하다.


아마도 삶이 계속 이런 식으로 이어져서, 꽤나 평화로운 할아버지까지 되어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불평불만을 한다. 나는 그런 의견을 듣는 게 재밌게 느껴진다. 나와 친한 사람 중에는 까칠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그런 까칠함의 잘잘못을 가리고픈 생각이 별반 들지 않는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나도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저 관대하게 이해해줄 것이다. 그렇게 적당히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다. 어쩌면 나는 좋은 인간관계의 방식에 대해 비로소 조금 알아가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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