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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20. 2023

아기코끼리와 노부부


아무 생각 없이 틀었던 다큐멘터리가 너무 좋아서, 안방에 있던 아내를 데려나왔고, 울면서 봤다. 40분짜리 짧은 다큐였는데, 부모를 잃은 아기 코끼리를 거두어 살려낸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처음부터 영상이 너무도 신비롭게 느껴졌던 것은, 온갖 야생동물들이 가득한 자연 속에서 섞여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때문이었다. 마치 엘프들이 살아가는 숲속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기코끼리와 노부부>라는 이 다큐멘터리 속 노부부는 인도에서 최초로 부모를 잃은 아기 코끼리를 살려서 성장할 때까지 키워낸 이들이라 한다. 대부분 그런 시도는 실패하는데, 이들은 온 마음으로, 지극정성으로 이 코끼리를 살려낸다. 거기에는 아주 특별한 비법이나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진짜 마음으로, 부모가 되어주었을 뿐이다.

며칠 전 있었던,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강연에서,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작가님은 사랑이 무엇이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람의 사랑이란 동물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사랑이나, 사람과 동물이 나누는 사랑이나, 동물과 동물이 나누는 사랑이나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 오랜 시간 함께하고, 정성을 들이고, 정들고, 애착을 형성하고 그렇게 한 시절 함께 살아가는 일이 사랑인 것 같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노부부와 코끼리가 나누는 사랑을 보고 있으면, 저 사랑이 나의 그 어떠한 사랑보다 열등하다거나 나의 사랑과 다른 것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코끼리를 거둔 여인은 얼마 전 잃었던 딸에 대해 이야기한다. 딸을 잃고, 이 아기 코끼리가 왔다고 말이다. 그리고 몇 년간 함께 한 코끼리가 이제 '살아나서' 그들을 떠나게 되었을 때, 마치 자식을 잃은 것처럼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 생명을 살린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

그들은 대대로 코끼리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인도의 한 야생동물 보호구역 내에 있는 마을인데, 그들의 삶은 그렇게 자연에서 시작하여, 자연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니, 내가 속해 있는 도시의 삶이란 참으로 허상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양복을 입고 매일 시멘트 건물로 출퇴근하며 살아가는 이 삶과, 저 온 몸과 마음으로 자연과 다른 생명들과 교감하며 매일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저 삶 중, 어느 쪽이 더 삶다운 삶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의 현실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그저 무덤덤해지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너무나 바다가 그립거나, 이곳이 아닌 다른 진짜 삶으로 가고 싶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곳에서의 삶은 너무 다 알아버린 것 같은데, 만원 지하철과 교통체증, 쇼핑몰, 도시를 견디기 위해 마시는 술, 가끔 보는 영화, 소비생활, 그런 것들이 전부이고, 그런 생활에 중독적으로 빠져들어 나갈 수 없지만, 과연 그것이 삶이 있어야만 하는 유일한 곳인가에 대해선 종종 의문이 든다.

자주 더 삶다운 삶,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한 노부부가 그저 아기 코끼리 한 마리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잠시 보았을 뿐인데, 내 삶이 왜 그리도 가짜같이 느껴졌는지 모를 일이다.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걱정이나 근심 같은 것들이, 얼마나 허상같은 삶의 일부처럼 느껴졌는지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문어 선생님>보다 좋았고, 근 몇년간 본 다큐멘터리 중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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