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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07. 2023

AI 시대에는 더 이상 글쓰기를 할 필요가 없을까

Unsplash의DeepMind


이제 AI가 글쓰기, 그림, 음악 등 인간이 하던 가장 창의적인 일들을 모두 대체할 거라는 전망이 많이 나온다. 실제로 AI가 유려한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써내고, 그림이나 만화를 그려내고, 멋들어진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하는 것 쯤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망가들이 하나 간과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비'와 관련된 전망이라는 점이다. 

오늘 아침, 아이가 열심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걸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AI가 인간보다 뛰어난 그림을 무한정 생산하면,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릴 필요가 없는건가? 그래서 크레파스도, 스케치북도, 색연필도 필요 없어지는 걸까? 그러나 곧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에게는 AI와 무관하게,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 가치, 기쁨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우리는 집에서 가만히 누워서 세계 최고의 연주와 노래를 유튜브로 들을 수 있지만, 시간과 돈을 써서 콘서트장을 찾아간다. 사람이 직접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걸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콘서트장에서는 집에서 누워 듣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 황홀경, 연대감, 즐거움을 얻는다. 함께 참여하고, 함께 노래부르고, 함께 분위기를 만들면서 말이다. 

AI가 모든 걸 번역해주는 세상에서 외국어는 배울 가치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평생 내가 태어난 작은 나라에 갇혀 사는 것만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의 육성, 내 목구멍에서부터 나오는 공기의 울림으로, 상대의 눈을 마주치면서 소통을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소통에는 기계적인 번역 이상의 것이 있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는 보다 복잡한 제스쳐, 오감, 디테일한 맥락들이 포함되며 소통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AI가 모든 걸 써주는 시대가 될 것이므로, 글쓰기를 할 필요가 없을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글쓰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은데, 무엇보다 오로지 아이 자신만이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 경험한 방식,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그 깊이를 스스로 표현하는 것의 기쁨을 알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소비가 쉬워지는 세상일수록, 생산의 가치는 올라간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그렇다. 

세상에는 소비할 것들이 이미 넘쳐난다. 평생 봐도 다 보지 못할 그림, 만화, 소설, 영화, 음악이 있다. 그런 것들을 AI가 더 무한하게 더 많이 만들어낸다면, 그래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소비할 것들이 무한정 늘어난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스스로 생산하는 기쁨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이 생산의 영역이야말로 한 인간의 가장 고유한 영역이고,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다.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며, 그렇게 세계와 관계맺어나가는 방식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다. 

AI 발달로 모든 자동차가 자율주행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전거를 탈 것이다. 삶에는 효율성만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행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소비 보다는 함께 참여하고 경험하며 생산하는 형태의 '복합적 소비'가 중요해질 것 또한 분명하다. 효율적인 생산은 AI가 대체하더라도,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는 스스로 해내는 데서 얻는 기쁨의 중요성을 더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아이에게 계속 자신의 마음과 힘과 능력으로 세상을 대하고, 무언가를 창조하며, 표현하는 방법을 부지런히 알려주고, 그것을 북돋아줄 것이다. AI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그림책을 만들어낼지 몰라도, 그런 그림책 수 천권은, 네가 너의 상상력으로 시간을 쏟아 만들어낸 이 시절의 그림책 한 권의 가치에 미치지 못할 거야, 라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전자는 AI가 만들어낸 물건일 뿐이지만, 후자는 너의 삶이기 때문이란다, 삶 보다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라고 말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더 삶의 진정한 측면이랄 것을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무엇이든 공장식 생산, 소비를 위한 소비, 같은 것에 인간이 갈아넣어지는 시대는 점점 끝나갈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과 능력으로 삶을 누려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존엄이 되는 것이고, 우리 삶의 진정한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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