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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06. 2023

저출생(저출산) 문제와 청년 세대의 트라우마

Unsplash의Isaac Quesada


최근 우리나라 출생률이 0.7명대로 떨어지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최하는 물론이고 우리가 흔히  '저출산고령화' 사회라고 말하는 일본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사실상 우리 사회가 스스로 만든 '인과응보'적인 측면이 강하다. 


저출생 문제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지만, 그 핵심 중 하나로 '집단적 트라우마' 사회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출생률을 '견인'해야 할 2030세대는 살아오면서 대부분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그 트라우마의 이름은 '박탈 또는 도태'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줄세우는 문화가 만연하면서, 대략 중상위권에 들지 않는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열등생이라는 기분을 학창 시절 내내 달고 살아야 했다. 걔중에는 예체능에 소질을 발휘하거나 자기만의 꿈을 가진 경우도 더러 있으나, 상당수는 학대 당하는 기분으로 교실에 앉아 있거나 엎드린 채로 '도태되는 기분'만을 견뎌야 했다. 


이 느낌은 사실상 인생 내내 따라다니는 것이 된다. 어린 시절, '도태되는 기분'을 가장 공포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학대처럼 경험한 세대는 나머지 인생에서도 계속 이런 기분과 싸우게 된다. 20대가 되면, 일차적으로 학점이나 스펙 관리, 취업 준비에서 수시로 이런 박탈감이 찾아온다. 그 다음에는 직장의 서열로, 직업의 귀천으로, 휴가지 호텔 수준으로, 자동차로, 사는 동네로, 결혼식장이나 아이 유치원, 학군으로 비교되며 끊임없이 '도태되는 기분'의 파도를 맞게 되었다. 


사실상, 이 집단과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한 이러한 기분은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트라우마란 본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나뭇가지 근처에만 가도 견디기 힘든 기분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서열과 도태에 따른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이 조금이라도 도태되는 기분이 도래한 순간, 그것을 떨쳐낼 수 없이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현명한 세대는 이 트라우마를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깨달았다. 그것은 저 집단 히스테리적인 비교 사회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잘난 부부와 비교하여 '도태되는 기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아이 교육이나 성적 때문에 괴롭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철저하게 자기 만족에 몰두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남들이 인생을 짊어지는 동안 최대한 누릴 것은 누리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트라우마를 회피하거나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모종의 이타성마저 있다. 자기가 살아온 그 '도태되는 기분의 삶'이라는 것을 더 이상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가 인생에서 늘 도태되는 기분을 느껴왔다면, 아이의 삶이 그와 반대일 거라 상상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도태되든 말든 내버리는 이 사회에서 더 이상 희생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결단도 있을 법하다. 


어떤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사실상 몰락으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몰락은 더 이상 '무한 도태의 삶'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청년들의 결단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나아가 그런 결단을 만든 건 너무도 명백하게 그간 우리 사회가 작동되어 온 방식 그 자체에 있다. 소수를 제외하곤 탈락시키고, 허겁지겁 타인들을 쫓을 수밖에 없게 만들고, 어느 날 가만히 있었다는 이유로 벼락거지가 되게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도태되는 경력단절로 내몰고, 공동체의 책임 보다는 개개인의 잘못만을 따지는 사회의 결과, 이 '저출생 인과응보'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사회에게 남은 길이 있다면, 좁은 절벽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나머지는 떨어뜨리는 사회 시스템과 문화 전반을 바꾸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든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가 도태되는 사회라는 인식 자체, 현실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결혼과 아이 탄생 이후 싸그리 묶여 더 도태되는 삶으로 간다는 공포로 점철된 사회에서, 저출생이 극복될 리는 만무한 것이다. 이 공포를 희망으로 바꾸는 건, 실제로 그런 현실, 사회, 문화를 만드는 방법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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