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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28. 2023

무한한 가능성은 삶을 파괴한다

Unsplash의Micha Brändli


'무한한 가능성'이란 흔히 긍정적인 맥락에서 쓰이지만, 실제로는 삶을 파괴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무한한 가능성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그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이 세상에는 무한한 연애 상대가 있고, 내가 오늘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보다 더 나은 누군가가 지구 어딘가에 있다는 그 가능성을 믿다 보면,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된다. 세계 최고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으면,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끝없는 레이스에 올라선 것과 같다. 


유명세에는 끝이 없고, 돈을 버는 일에도 끝이 없고, 경력에도 끝이 없다. 물론, 걔중에는 '거의' 정상에 오르는 사람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그 끝없음의 바다 어느 중간쯤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렇기에 무한한 가능성은 삶을 파괴하는 한 방식이 된다. 모든 종류의 '중독'이 이와 비슷하다. 중독은 '완전한 충족'이 언젠가 있으리라 유혹하며 삶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만약이든 도박이든 궁극적인 만족이 오는 게 아니라, 결국 종국적인 파괴로 돌아올 뿐이다. 


물론, 삶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믿는 일은 필요하다. 반대로 전혀 삶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지금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게 될 것이다. 약간의 모험, 약간의 위험 감수, 약간의 가능성을 믿고 일어서는 건 삶이 나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일에서의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그곳까지 가는 어려움이나 힘겨움을 견뎌내야 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어느 선에서 '제한'하지 않으면, 우리는 삶을 영원히 사랑할 수 없다.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제한해야만 한다. 오늘을 사랑하려면, 오늘이 '다른 오늘'이 되었을 수 있었을 가능성을 부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내가 다른 꿈을 가졌거나, 다른 부모 밑에 태어났거나, 다른 곳에 투자했거나, 다른 사람을 만났거나, 다른 곳에 갔더라면 오늘은 '다른 오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른 오늘'에만 사로잡히게 되면, 오늘은 그보다 하찮은 것이나 열등한 것이 되고, 오늘을 사랑할 방법이 없어진다. 


얼마 전, 내게는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아마도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질문은 '어떻게 하면 더 소중한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매일, 매 순간에 이런 질문을 가진다면, 삶을 분명 더 나은 것이 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나는 이 시간을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는 이 주말을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을까? 그 방법은 내게 주어진 이 오늘이라는 제한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오늘에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따라 오늘은 더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 오늘 아침을 어떻게 보낼까. 어제 아침에는 마시지 않았던, 조금 더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고, 평일에는 하지 못했던 아침 산책을 하고, 좋은 음악을 한 곡 들으며, 오늘 바로 여기에서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볼 수 있다. 회사 점심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곳에 가서 책을 읽거나, 동료들과 이야기나눌 재밌는 소재거리를 준비해볼 수도 있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정말 좋은 영화 하나를 마음 먹고 볼 수도 있다. 배우자와 싸운 채 일주일동안 화해하지 않은 것보다, 빨리 화해하는 것이 더 나은 오늘을 만든다. 


삶을 사랑하려면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을 받아들일 때부터 삶을 사랑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오늘을 더 소중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그런 전제 하에, 이따금 삶의 가능성들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로 뛰어드는 게 아니라, 한 걸음씩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가능성들을 실험해보는 것이다. 이 태도가 뒤집히는 건 간단하지만, 뒤집혀버리는 순간부터, 우리가 삶을 사랑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다.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황야만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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