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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pr 24. 2023

자기만의 별에 갇혀 사는 어른들 (feat. 어린왕자)


사람은 타인에게 솔직하게 의존하는 사람과 의존하지 않는 척하면서 의존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지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가장 타인에게 의존하지만, 의존하지 않는 척한다.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기를 떠받들여주고, 자기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에게 의존한다. 자기를 대단하다고 여겨줄 사람이 없을까봐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한다. 


자기를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 타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내가 근사한 명품들을 걸치고 있더라도,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차감'으로 대변되는, 외제차에서 내릴 때 타인의 시선, 명품백을 메고 있을 때 타인의 시선, 그 시선에 가장 의존하는 사람들이 과시욕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실 누구보다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그저 자기가 잘났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척 하지만 누구보다 깊이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오히려 더 당당하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의 존재에 감사하고, 당신의 있음을 원하며, 당신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어 좋음을 정확하고 알고 이해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마 인간이 성숙해가는 방식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척, 일종의 모순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직접 타인을 마주하는 일이라고도 느낀다. 


타엔에게 의존하지 않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타인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은 어딘지 병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들을 곁에 두는 방법이 더 많은 권력이나 돈이나 명품을 가지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진짜 타인을 곁에 두는 법, 진짜 타인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법은 그냥 그 타인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걸 인정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장 달려가 안기고, 놀자고 조르고,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깔깔대고, 가지 말라고 운다. 그러나 어떤 어른들을 그럴 줄 몰라서, 더 많은 명품을 걸치고, 더 높은 지위를 얻고, 더 많은 권력을 얻으려고만 한다. 타인과의 진짜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워, 자기 자신을 속이는 방식으르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다. 마치 돌멩이를 많이 모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 줄 알고, 계속 돌멩이에 집착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에는 어린 왕자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어느 별의 왕이 나온다. 그는 모든 걸 지배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그가 원하는 건 그냥 곁에 있어줄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그는 제발 자기 명령을 들어줄 신하 한 명이 남기를 바라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사랑할 누군가를 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마주하지 못하여, 계속 자기가 왕이라는 사실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 눈에는, 바보 같이 비칠 뿐이다. 


그밖에도 <어린 왕자>에는 자기 안에 갇힌, 자기만의 별에 사는 어른들이 나온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의 찬양을 바라고, 술만 마시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냥 눈앞에 있는 타인을 타인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타인이 있는 이 눈앞의 세계로 뛰어들지 못한 채, 자기 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어른이란, 자기 별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존재다. 


그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방법이 있다면, 역시 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 받고, 정성과 시간을 들이며, 하나 뿐인 삶을 그렇게 소모하는 일이다. 자기 별만을 쌓아올리며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라는 별들을 여행하면서, 때론 타인들을 초대하는 우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나와 당신을 가르는 벽을 허물고, 나와 당신이 함께 속한 삶에서 진심어린 우정과 사랑, 연대를 이루는 일이다. 얼마 없는 내 삶의 시간과 다정을 그냥 당신에게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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