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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19. 2023

1인당 명품 지출 세계 1위 한국의 소비 전시 문화


얼마 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결혼 문화에 대해 1면에서 보도했다. 결혼 전 약 600만 원에 가까운 프러포즈가 유행한다고 하면서, 하루 숙박비 150만 원이 넘는 초고급 호텔의 프로포즈 패키지, 최소 몇 백만원짜리 명품백과 시계를 교환하는 프로포즈에 대해 알렸다. 인스타그램 등에는 '호텔 프로포즈' 게시물만 4만개가 넘는데 대부분 명품이 놓여 있다면서, 전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지출이 한국보다 많은 나라는 없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이런 사치 문화가 한국의 저출생 문제 해결도 방해하고 있다고 적었다.


개인적으로 최근의 전시 문화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상당수가 아름다움과 개성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소비와 서열을 전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흔히 전시되는 것은 가장 값비싼 소비나 서열과 관련되어 있다. 몇 천만원짜리 가방이나 시계, 몇 억자리 자동차나 몇 십억짜리 한강뷰 아파트를 전시하는 건 자기만의 아름다움 보다는 자신의 서열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서열에서 오는 만족감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화려해보여도 속은 텅 비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호텔의 똑같은 패키지를 자랑할 때, 그것은 겉으로는 매우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 사람의 텅 비어있는 미에 대한 안목, 아름다움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자기만의 고유한 미적 감각과 안목을 가진 사람은 차라리 길가에 떨어진 나뭇잎과 돌멩이의 배치에서 감탄한 사진을 찍어 올릴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상상력에 대한 부재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상상력을 가지고 삶을 사랑할 방법과 힘을 가지지 못할 때,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 같은 쾌락을 누릴 수밖에 없다. 당장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대화를 하며 무슨 놀이를 하고 어떤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야할지 전혀 모를 때, 가장 좋은 건 일단 돈을 쓰는 것이다. 돈이 주는 획일화되고 천편일률적인 쾌락에 최대한 쉽게 탑승하는 것이다. 


사실, 돈으로 인한 소비로 매겨진 서열은 그 자체로 매우 추상적이고 메말라 있는 것이다. 돈으로 모든 걸 환원하면, 그것은 그냥 '추상적인 숫자'일 뿐 그 자체에는 아무런 아름다움도, 경험도, 행복도 없다. 돈이 중요한 것은 돈으로 진짜 아름다움과 경험과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을 때이다. 그러나 '돈의 서열'만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돈을 통해 다가가는 일련의 진짜 경험 보다는 그 물건의 이면에 있는 '숫자'만이 가장 중요하다. 전시되는 것은 사실 그 숫자의 서열이라는 점에서, 이런 전시는 마치 명품을 걸친 해골과 같다. 


우리 사회는 어릴 적부터 교육에서도 주입식 교육과 그로 인한 등수와 서열 매기기만을 중시해왔고, 그밖에서 자기만의 개성, 고유성, 아름다움, 기준 같은 것을 계발하는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제는 문화 전반이 오로지 추상적인 서열이라는 뼈대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정작 그 위에 피와 살을 이루는 문화, 경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은 도리어 별볼일 없는 것들이 되었다. 진짜 내 입맛에 맛있는 것 보다는 비싼 오마카세, 진짜 내 눈에 아름다운 것 보다는 비싼 브렌드, 진짜 내게 좋은 경험을 주는 곳 보다는 비싼 호텔식 경험만이 최고라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거의 끝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나랑 맞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공을 들인다. 나만의 취향과 루틴을 만들고, 나만의 가치기준과 삶의 중심을 만들어가는 일 자체가 이런 '소비 서열' 사회랑 싸우는 한 방법이자, 내 삶의 고유성, 나 자신의 개성을 지키는 방편이라 느낀다. 그래서 나는 매일 책 읽는 몇 시간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오로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준으로 선택한 책 몇 권이 나의 존엄을 지킨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고, 서로의 말과 글에 관심을 가지며 작은 연대를 만들어가는 일을 이어가고자 한다. 내가 만든 두 개의 뉴스레터(세상의 모든 서재, 세상의 모든 문화)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그저 알고보면 뼈대 밖에 없는, 해골로서의 삶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취향과 기준과 의지로 꽉 찬 나의 삶이다. 나는 그저 꽉 찬 진짜의 삶을 살고 싶을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그랬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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