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과 함께 해온 삶

by 정지우


이번 책을 쓰면서 감회가 남달랐던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여동생과 처음으로 함께 쓴 책이라는 점이다. 여동생은 고등학생 때부터 변호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고, 나보다 2년이나 먼저 변호사가 되기도 했다. 언젠가 신문에서 애플과 삼성의 특허 분쟁을 보고 나서는, 자신도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15년쯤 전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여동생은 대학시절부터 갖은 노력으로 그 꿈을 향해 다가갔다.


그와 달리, 나는 변호사 같은 것은 어쩐지 재미없어 보였고, 그보다는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소설을 창작하거나 책을 쓰면서 20대를 보냈다. 로스쿨을 가게 된 건 서른도 넘어서였다.


작가로 10년 이상을 살았기 때문에, 변호사가 되었다고 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왜 변호사가 된 것이냐고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사실, 인생에서의 모든 중요한 선택에는 한 가지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기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그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동생이라는 걸 알고 있다. 여동생은 로스쿨에 들어간 직후부터 계속해서 내게 변호사가 되길 권유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크게 성공한 작가들도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천성적으로 작가라는 직업이 잘 맞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크게 성공한 작가도 아니었고, 작가로 살면서 끊임없는 불안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수입과 성취를 비롯한 현실적인 모든 부분들이 매우 불안정했고, 그럴수록 삶에 대한 신념도 흔들리듯 느껴졌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의 사랑을 책임지고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나 스스로 무엇보다 ‘안정감’을 가져야 한다고 절실히 느꼈다.


그 무렵부터 ‘자유롭게 창작만 하며 사는 작가’로서의 이상을 접어두고, 부지런히 언론사나 출판사 취업을 알아보기도 하고, 고정적인 벌이를 찾아 여러 일들을 해보기도 했다. 여동생은 그렇게 다소 방황하던 서른 무렵의 나를 보며, ‘로스쿨로 오라’고 계속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곳은 항상 읽고 쓰고 논쟁하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누구보다도 내게 그 일이 어울릴 거라면서 말이다. 학비도 국립대는 비싸지 않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권유를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로스쿨에 한 번 도전해보았으나 떨어졌고, 한해 더 방황을 거치다가 두 번째 입시에 성공하게 되었다. 로스쿨에 들어가 마이너스 통장을 쓰던 여동생을 위해 노트북을 사준 적이 있었는데, 반대로 내가 로스쿨에 들어간 뒤에는 여동생이 이따금 용돈처럼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다. 현실적으로는 결혼과 육아에, 중간중간 글쓰기 수업까지 하며, 모아놓은 돈과 장학금으로 간신히 버틴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운 좋게 그 모든 일을 이겨낸 셈이 되었다.


어릴 적에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여동생의 두 번째 아빠나 다름없어서, 여동생을 키운 것이나 마찬가지로 믿고 있었다. 여동생에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친 것도 나였고, 여동생이 그토록 좋아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같은 걸 알려준 것도 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보니, 어느덧 여동생이 내 삶을 이끌어온 것 같기도 하다. 여동생이 하고 싶다며 앞장서 나갔던 ‘지식재산권 분야 변호사’를 어느덧 나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동네에서 가장 사이 좋은 남매로 유명했다. 어디를 가나 함께 손잡고 다니면서 경비아저씨를 비롯하여 온 동네 이웃들에게 멀리서부터 “안녕하세요!” 소리치는 ‘인사 좋아하는 남매’였다. 어쩌면 이렇게 어른이 된 시점에서, 둘이 함께 책을 내놓는 것도 이 세상 사람들에게 20, 30년 만에 그 시절의 인사를 다시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시절, 우리가 인사하면 세상 모든 어른들이 웃어주었다. 이번 책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웃음, 혹은 작은 위안, 혹은 어떤 의미가 되기를 바라본다. 이번 책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이 어느 누군가의, 당신의,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기여하는 이슬 한 방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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