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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11. 2023

삶을 지배하는 두 가지 영역


삶은 크게 자기계발, 현실, 도파민이 지배하는 영역과 현실 바깥, 자기만의 방, 옥시토신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나뉘는 듯하다. 전자의 세계는 우리를 계속 욕심과 흥분에 사로잡히게 만들면서 자극하고 더 치열하고 열띤 세계로 안내한다. 반면, 후자의 세계는 우리를 가라앉히고 삶을 사랑하는 다른 방식을 가르치며 자기만의 세계에서 숨쉬고 기거하는 것의 평안함을 알게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세계는 한 번 빠져들면 그 바깥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한쪽 세계에 빠져 있을 때는, 다른 쪽 세계를 폄하하거나 '없는 취급'하고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 자체를 다소 믿을 수 없어한다. 마치 우리가 한 번에 하나의 나라에만 있을 수 있듯이, 이 두 세계도 한 번에 한 곳에만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두 세계의 조화는 어렵고, 사실상 두 세계의 조화를 이룬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른바 자기계발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 돈과 권력과 인기를 얻는 데만 사로잡힌 사람은 그것이 인생 최고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삶의 고요한 평안이나 소소한 만족에 완전히 빠진 사람은 아둥바둥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공허하게만 묘사한다. 그러나 막상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뛰어 들어가보면 어느 쪽이든 그 나름의 만족, 기쁨, 즐거움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양쪽 세계에 번갈아가면서 빠지곤 한다. 전자의 세계에 빠져 있으면, 스스로 발전하거나 무언가를 얻어가는 일에서 오는 성취감을 느낀다. 실제로 나아지는 것도 있고, 뿌듯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너무 지속되면, 내가 약간 미쳐버린 것처럼도 느껴지고, 꽤나 불행하게도 느껴진다. 어디까지 얼마나 더 쫓아갈 것인가? 언제까지 이 도파민의 흥분된 지배에 사로잡힐 것인가? 내가 찾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럴 때면, 나를 서서히 회수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익히 좋아하던 것들이 돌려놓으려 한다. 철학책이나 소설을 다시 읽고, 역사나 문명에 대한 공부를 해보려 한다. SNS 대신 일기장에 글을 쓰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집중한다. 그러면 내가 원하던 행복이 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에 손만 뻗으면 있었다는 걸 느끼곤 한다. 멀리 가려고 사는 게 아니라, 여기 있으려고 사는 것이라는 걸 느낀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런 상태에만 계속 머물러 있으면, 일종의 매너리즘이 찾아온다. 삶이 조금씩 갑갑하게 느껴지고 무언가를 '깨고' 나가고 싶어진다. 그럴 때, 어떤 투쟁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또 한 동안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상태가 된다. 성장, 성취, 의욕, 욕심 같은 것이 나를 사로잡으면서 무언가 전방위적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진다. 이것은 '전적인 반복'으로 밖에 경험을 할 수가 없다. 여기 빠졌다가 저기 빠졌다가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이런 '반복'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랄 게 있다면, 최소한의 루틴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현재에 만족하는 소확행 상태에 있더라도, 경력이나 일에서의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식이다. 아무리 여기가 좋아도, 고인물이 되지 않고 나아가게끔 애쓰는 영역을 두는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성취에 사로잡힌 시절이 있더라도, 매일 저녁이나 주말의 몇 시간은 그런 의욕에서 벗어날 시간을 강제로 만들어둘 필요도 있다. 그러면 우리가 꿈 속 공간에 갇혀 자기 자신을 잊기 전에, 반대로 다른 꿈에 갇혀 현실을 잊기 전에, 되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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