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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19. 2023

씨뿌리듯 사는 삶

삶이란, 아마도 씨 뿌리기가 아닌가 싶다. 매일같이 뿌리는 씨앗들이 언제 꽃이 되고 나무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뿌려두면 언젠가는 자라서 삶이라는 숲을 이룬다. 삶이라는 건 당장 레고 만들듯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부지런히 씨를 뿌려두는 일인 것이다. 인생의 거의 모든 일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시절 깊이 몰두하며 읽어두었던 책이나 눈물 흘리며 봤던 영화는 언젠가 되돌아온다. 삶의 어느 순간, 그런 책이나 영화를 봤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있을 무렵, 불현듯 생각 나 내 삶을 설명해주곤 한다. 혹은 그렇게 감동받으며 읽고 보았던 것들이 알게 모르게 내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 내 삶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지금도 내 삶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그것들은 내가 삶에 심은 씨앗들이다. 


글이나 책을 쓰는 일은 조금 더 확실한 '씨앗 심기'처럼 느껴진다. 이를테면, 내가 인터넷 어딘가에 써놓은 글 한 편은 세상을 돌고 돌면서 누군가에게 계속 닿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내 글을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가 심은 씨앗이 그에게 닿아 꽃이 피었고, 그와 나는 먼 길을 걸어 만난 인연처럼 만나게 된 것이다. 아직도 5년 전에 쓴 글, 3년 전에 쓴 글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5년에 전에 화단에 심은 씨앗이 어느덧 나무가 된 걸 보는 것과 같다. 


언젠가 내게 타인에게 기울였던 진심어린 관심과 마음은 나도 잊고 있을 때, 다시 되돌아온다. 그 누군가는 그 호의를 기억하며 연락이 오고,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 호의를 갚으려 하기도 한다. 타인에게 베풀거나 호의를 보내는 것 또한 일종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그 씨앗은 정말이지 10년, 20년 뒤에 나무가 되어 내게 열매를 줄 수도 있다. 살다보면,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10년 전에 밥을 사주고 책을 선물해줬던 누군가가, 10년 뒤에 내 책을 여전히 잘 읽고 있다며 밥을 사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 


사랑이야말로 씨앗을 심는 일의 결정판이 아닐까? 아이에게 쏟은 사랑은 아이의 자람으로 되돌아온다. 아이에게 알려준 작은 지식 하나, 아이에게 쏟았던 걱정 한 줌, 아이를 위해 달리고 놀았던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아이의 성장과 인격과 삶을 이룬다. 아이는 나무가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상처를 씻고, 성격이 변하고, 꽃이 되는 걸 볼 수 있다. 사랑은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일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씨앗을 건네어 심어준 적이 있다면, 그것은 꽃이 되고 나무가 된다. 좋은 글이나 이야기는 꽁꽁 숨겨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기 보다는 민들레씨처럼 멀리 공유하게 되면, 많은 곳에서 피어난다. 그러면 언젠가 그것들이 피어나 반드시 삶에서 다시 만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때론 가벼운 인사로, 때론 깊은 고마움으로, 때론 현실적인 제안으로, 때론 과분한 성장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 모든 일은 상호성 안에서 일어나며 순환하고, 서로의 삶을 만든다. 


그러니 삶을 만들고 싶다면, 역시 자기 안에만 꼭꼭 숨어 있거나, 꽁꽁 갇혀 있지 말고, 씨를 뿌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의해야할 게 있다면 독을 심거나 뿌리지는 않도록 애써보는 것이다. 독이 아니라 생명을, 조금은 그 누군가에게 더 나은 순간과 삶을 선물할 수 있는 것을, 나아가 미래의 나 자신에게 언젠가 꽃필 수 있을 무언가를 매일같이 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심은 좋은 것들은, 언젠가 좋은 것들로 피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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