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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31. 2023

비효율적으로 살아온 삶


생각해보면 나는 매우 비효율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내 20대는 주변의 거의 누구한테도 이해받기 어려웠다. 다들 취업 준비 아니면 대학원 진학, 하다못해 스타트업 창업이라도 하고 있는 와중에 '작가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살고 있는 건 정말이지 나 밖에 없었다. 


졸업을 유예하다가 뒤늦게 대학원에 간 것도 마지못한 데가 있었다. 그렇게 간 대학원은 당연히 내게 맞는 진로일 리가 없었다. 결국 석사를 수료만 하고 나와버린 서른 살에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써낸 몇 권의 책은 있었지만, 그것이 현재도, 미래도 담보해준다고 믿을 순 없었다. 다시 돌아가서 논문이라도 써야하나? 아니면 늦었지만 취업이라도 알아볼까? 다른 길은 있을까? 그런 고민으로 매일이 가득 차올랐다.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흔히 '작가'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 정말 전업으로 글만 쓰는 작가는 극소수였다. 대부분은 별도의 직업이 있거나, 대학원을 다니며 학위를 얻고 대학 강사 생활을 하거나, 출판사를 차리거나, 수업이나 강의 등으로 별도의 수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른의 나는 무슨 고집에서인지 '글만 쓰는' 삶을 살고 있었고,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소수가 아니었던 내게 그런 방식의 삶이란 점점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무렵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학위 과정을 밟든, 부지런한 강의 생활을 시작하든, 어딘가에 취업을 하든 선택이 필요했다. 언제까지고 '청춘'이라는 변명 하에 '현실'을 미뤄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매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나는 삶을 한 번 크게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남들보다 한참 늦었지만, 남들이 나보다 앞서 뛰어들었던 그 현실에 뛰어들기로 했다. 가능하면 가장 치열한 현실로 뛰어들어, 삶의 정수랄 것을 경험해보기로 했다. 


당시 내가 생각하기로 '가장 치열한' 현실로 뛰어볼만한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기자였고, 다른 하나가 변호사였다. 철학과 문학, 관념의 세계에 갇혀 몽상하는 듯 살았던 내게는 그런 경험이 일종의 특효약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책과 글의 세계에 파묻혀 있는 동안 두려워했던 그 현실로 뛰어들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언론고시와 로스쿨을 준비했다. 토익 학원도 처음 다녔고, 취업과 입시 스터디라는 것도 처음 해봤다. 


언론사 시험에도 많이 낙방했고, 로스쿨 입시도 한 번 떨어져 재수를 했는데, 결국 운명은 로스쿨로 나를 이끌었다. 로스쿨에 가니 나이 많기로는 120명 중에 열 손가락 안에는 들었다. 처음에는 법학 공부에 적응을 못해 120명 중 100등을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해에는 5등까지도 해보았다. 35살에 처음으로 신입사원이 되었다. 동기들 중에는 벌써 집을 샀다느니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적금을 들어 보았다. 


이 비효율적이게 짝이 없는 삶,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거의 실패 아니면 남들보다 한참 뒤처진 기록이 가득한 삶이지만, 나름대로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런 비효율적인 삶이 오히려 나만의 고유한 삶의 역사를 그려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돌아봐도 '나처럼' 산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빙빙 돌아와서 산 삶이 나의 개성을 만든 셈이 되었다. 이를테면, 그런 '특이성'은 인터뷰를 할 때는 오히려 주목할 만한 핵심이 되곤 한다. 이상하게 빙빙 돌아 비효율적으로 살아온 것이 나름의 개성이 된 것이다. 


아마 나는 앞으로의 삶도 이상하게 살지 않을까 싶다. 내 나름의 이상한 고집들을 이어가면서, 흔히 세상의 기준에서 비효율적이거나 한심하게 짝이 없어 보이는 길들을 굽이굽이 돌아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잘 몰라도,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에 이르면 자기 삶의 모양이랄 것을 짐작하게 되는 듯하다. 나는 지난 10년을 전혀 예상할 수 없이 살았는데, 앞으로의 10년도 전혀 예상할 수 없다고 느끼곤 한다. 나는 이상하고 비효율적인 삶을 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내 마음에 다가서는, 나의 삶을 살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모두에게 타당한 삶이 아니라, 나에게 최선인 삶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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