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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02. 2023

여동생의 꿈이 내 직업이 되었다

동생은 청소년기 때부터 자신의 꿈이 지식재산권 변호사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동생이 이후 살아간 여정을 보면, 사실상 변호사랑은 별로 관련이 없었다. 공대에 입학해서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고,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을 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로스쿨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사실 다들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동생과 같은 학과에서 로스쿨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었고, 나도 동생이 그런 꿈은 진즉에 잊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생은 그 꿈이랄 것을 잊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사실 주위 대부분이 과연 공대 공부만 한 동생이 변호사가 되겠다는 것에 반신반의하며 동생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동생이 로스쿨에 합격하고, 변호사시험까지 합격했을 때는, 약간 기적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다소 바보처럼 착하고 순진하다고만 생각했던 동생이 '싸우는 대표 직업'에 들어섰다는 게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지금은 나도 말로 싸워 이기기 힘들 정도로 변호사다워졌다).


얼마 전 동생은 내게 "우리는 둘 다 꿈을 이루었네."하고 문자를 보냈다. "오빠는 청소년 때 맨날 작가왕이 되겠다고 했었잖아."라면서 말이다. 당시 만화 '원피스'에 푹 빠져있던 나는 "나도 작가왕이 될 거야!" 같은 소리를 하고 다녔던 터였다. 그러고 보면, 왕 같은 건 아니더라도 어쨌든 그랜드 라인을 항해하고 있는 작가 정도는 된 셈이다. 그 와중에 신기한 건, 나도 지식재산권 변호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그렇긴 한데, 나는 왜 지식재산권 변호사가 된거야." 나아가 이렇게도 말했다. "너도 작가가 되었네."


꽤나 신비로운 여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청소년기를 온전히 함께 보내며, 서로의 꿈을 듣고, 원피스나 지브리 만화 같은 것을 사랑하면서, 꿈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그로부터 20년쯤 지나 돌아보니, 동생의 꿈은 나의 일이, 나의 꿈은 동생의 일이 되어 있기도 하다. 나는 동생의 아주 끈질긴 권유로 로스쿨에 입학했다. 동생은 나의 권유로 함께 책을 썼다. 그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삶을 이루었다.


사실, 나는 로스쿨에 입학할 때까지도 변호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그 무렵에는 언론사 입사에 더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때였고, 로스쿨은 약간 대안적인 개념으로 지원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동생이 변호사 일이 나와 너무 잘 어울린다면서 거의 몇 년간 계속 권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정작 언론사로의 행보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나는 동생이 마술을 부린 듯 동생과 같은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은 동생과 함께 로스쿨을 다녔다. 동생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과정을 제대로 마칠 수 있었을지 의문일 정도로 많이 도움 받았다.


그렇게 변호사가 되고 나서, 나는 동생에게 글을 쓰라고 집요하게 권유했고, 동생과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를 만들었다. 사실, 이 뉴스레터의 목적은 내 책의 원고를 정기적으로 쓰는 것과 함께, 동생에게도 지면을 만들어주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뉴스레터가 지금은 작가 20명에, 구독자 수는 3천 명이 넘고, 다음카카오와 제휴를 맺어 조회수 몇만회 정도가 나오는 콘텐츠를 공급하는 정도가 되었다. 동생과 나는 함께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책을 출간했다.


그렇게 문득,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홀로 걸어가는 여정이 아니구나, 다시 생각한다. 이것은, 이 삶이라는 것은 때론 나 홀로 헤쳐나가고 홀로 해내고 홀로 이루어온 여정 같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 삶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가 진심을 다해 서로를 생각한 타인들이 미치는 마음의 힘이랄 것으로 이끌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생각한다.


여전히도 나는, 나와 진심을 주고받는 가족과, 또 어느 사람들과 그렇게 나아간다는 걸 아주 명료하게 느낄 때가 있다. 인생은 혼자 걷는 게 아니고 함께 걷는 것이다. 혼자 걷는 줄 알았던 길에서 슬쩍 주위를 둘러보면, 유령처럼 흐릿하게 누군가 보이기 시작하고, 이윽고 나와 함께 걷는 그 모든 사람들이 명료하게 보인다. 삶이란 그래서 타인의 손을 붙잡는 것이라는 걸, 매번 새롭게 깨닫곤 하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왔다는 것을 매번 약간 늦게 깨닫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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