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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12. 2023

결단을 내린 것들만이 삶이 된다

세월은 바삐 흐르고, 결단을 내린 것들만이 삶이 되는 듯하다. 언젠가 나중에 해야지 하고 마뤘던 것들은 계속 미뤄진 채로 남아 있고, 세월은 금방 흘러 있다. 그나마 그 시간 가운데 삶이 된 것들은, 어떻게든 결단을 내리고 시작했던 것들이다. 미루는 것들은 흩어 사라지지만, 결단을 내린 것들은 남아서 삶이 된다.


사실, 삶이 되는 많은 것들은 결단을 내린 순간에만 하더라도, 그럴 것이라 별로 짐작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를테면, 대단한 기대 없이 만난 사람이나, 별 기대 없이 재미삼아 해본 일이나, 그저 한 번 해볼까 하고 시작해봤던 것들이 운명의 장난처럼 이어지다가 결국 삶이 되어버리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어릴 적에는 삶이란 무언가 계획하고, 적절한 예감을 가지고, 착실하게 만들어지는 그 무엇이라고 막연히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삶이란 꽤나 중구난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어느 날, 그리 단단한 각오 없이, 한 번 들어나 가볼까 하고 들어갔던 PT샵을 1년째 다니게 되고, 거기에서 인연과 이야기를 얻는다. 그냥 한 번 만들어볼까 했던 뉴스레터, 그냥 열어볼까 했던 모임, 그냥 한 번 만나볼까 했던 사람, 한 번 읽어나 볼까 했던 책, 틀어나 볼까 했던 영화, 그런 것들이 어느덧 삶의 아주 큰 부분이 되곤 한다.


그러니 삶을 살아가는 태도란, 다소간 연못에 돌멩이를 던져보는 일과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듯 삶의 여러 일들을 해보는 것이다. 그 중에 몇 번은 산신령이 은도끼나 금도끼를 들고 나온다. 그리고 그게 삶이 되어버린다. 삶의 작은 결단들 중 몇 가지가 살아남아서 '빠른 세월' 곁에 차곡차곡 쌓인다. 남는 건 이 작은 결단들이 만들어낸 인연들과 기억들, 습관들, 취향들 같은 것이다.


돌멩이 던지는 게 귀찮을 수 있지만, 그 귀찮음은 살짝 극복하는 순간들을 쌓다 보면, 그 귀찮음을 극복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날들을 언젠가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살다보면 연애도 귀찮고 습관적인 무기력에 젖어들 수 있다. 그런데 연애가 아이의 탄생까지 이어진 걸 보고 있으면, 열심히 욕망하길 잘했다, 쪽팔림이나 부끄러움을 감수하길 잘했다, 애써 귀찮음을 극복하고 구애하길 잘했다,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다 그런 것이다. 귀찮아도 애써 욕망하다 보면, 욕망이 삶을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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