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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20. 2023

두려운 쪽으로 가야한다

삶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할 때, 나는 꽤나 명료한 나만의 기준을 하나 갖고 있다. 그것은 두려운 걸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이 길을 걸을지, 다른 길을 걸을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모르겠다면 더 두려운 쪽을 택한다. 내게는 두렵다는 게 많은 경우 거기에 내가 진정으로 더 원하는 것이 있다는 신호라는 걸 거듭 확인해왔기 때문이다.


보물을 찾는 여정에서 두 가지 갈림길이 있는데, 한쪽은 지금까지 이어진 것과 같은 평범한 길이고, 다른 한쪽은 어딘지 으슥한 것이 나무 괴물이 나올 것 같으면, 보물은 아마 나무 괴물 쪽에 있을 것이다. 보물이 있는 곳이라면 나무 괴물 정도가 지켜줘야 타당하다. 보물이 있는 꽃밭은 그 나무 괴물 숲을 지나면 있다. 나는 인생의 순간마다 그 나무 괴물을 찾았다.


근래 나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는데, 그것 또한 나무 괴물 쪽으로 가는 결단이다. 사실, 이런 결단은 내게 아주 익숙하다. 아마도 지난 10여년간, 이런 결단을 대여섯 번 정도 내렸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내게는 대학원 공부를 그만두는 게 그랬다. 사람에 따라서는 대학원 공부를 하는 것이 나무 괴물을 만나러 가는 일일 것이다. 오랫동안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는 게 두려워 미루고 회피하고만 있다가, 기어코 결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내게는 대학원을 등지는 게 용기였다.


10여년간 인문학의 세계에 있으면서, 나는 그 바깥으로 나가는 게 점점 더 두려워졌다. 매일 출퇴근하는 것, 현실에 부대끼며 돈을 버는 것, 치열한 이익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점점 나는 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석사를 수료하고 났을 때, 주변에서는 공부를 그만두려는 나를 말렸다. 지난 2년 간의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 나이 서른에 다른 일을 시작하긴 더 어렵다, 학위라도 받는 게 좋다, 그런 말들을 들었다. 나도 정말 많은 고민을 했지만, 내가 두려워하는 현실을 택했다. 10년 만에 학교 밖으로, 인문학의 성전 밖으로 나갔다.


변호사가 되고, 처음 공공기관에 입사한 이후, 송무에 뛰어들고자 했을 때도 두려움을 느꼈다. 1년 정도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나니, 바깥은 역시 야생의 들판처럼 느껴졌다. 송무 일이 얼마나 힘들고 험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지겹게 듣고 있었다. 그 때,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합격한 회사의 사내변에 들어가 공공기관에서와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송무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당시 후자가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원하던 것들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내가 찾아왔던 것을 하나로 정의해보자면, 자유였다. 독립할 수 있는 힘,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 어디 홀로 던져놓든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일, 큰 조직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 나의 자율적인 힘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자발성, 나의 능력과 창조력으로 만들어가는 시간, 나만의 스타일로 만드는 삶,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힘, 나는 그것을 원했다. 계속되는 갈림길에서 내가 두려운 쪽을 선택했던 건, 그런 쪽으로 가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 살라고 하면 솔직히 살아낼 자신이 없다. 너무 많은 갈림길들 속에서 너무 많은 고민을 하였고, 사실 지금 이렇게 살아 남아 있는 게 신기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나서 산다면, 그래서 그 나에게 하나의 쪽지를 남길 수 있다면, 나는 역시 이 삶에서 내가 알게 된 나의 진실에 대해 남길 것이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써있을 것이다. "두려운 쪽을 선택해야 해." 여기가 좋아서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저기로 가기가 두려워서 여기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저기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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