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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24. 2023

일이 때때로 삶을 구원하는 방식

일이 나를 구원한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해결하기 어려운 온갖 걱정과 불안이 똬리를 틀고 나를 둘러싼다고 느낄 때, 일을 하러 나가면, 그 모든 걱정과 불안을 잊을 수 있었다. 어쨌든 지금 눈앞에는 내가 해야할 일이 있고, 나는 그것을 해나가다 보면, 내 삶이 어딘가로 '전진'한다고 느낄 수 있었다.


방안에서 이불을 덮고 침대에 웅크려 있다 보면, 삶이 사방에서 나를 죄어든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삶에서의 여러 실책들이나 신경쓰지 못했던 문제들이 몰려와 나를 두들겨댄다. 그럴 때, 일차적인 방법은 아무 콘텐츠나 무료하게 소비하면서 문제를 '잊는 것'이다. 그리고 이차적인 방법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서는 것이다. 어디든 거닐다 보면, 내게 '고여' 있던 문제들이 풀려 나간다.


마지막으로, 삼차적인 방법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일에는 삶을 구원하는 힘이 있다. 일은 그 자체로 나를 세상과 엮어주고, 내 삶의 기반과, 또 미래와 엮어준다.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사회 속에서 위치라는 불꽃을 계속 피워올리고 있다는 뜻이다. 일은 경력이 되고, 능력이 되며,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를 연결해준다. 물론, 매달 나가는 카드값을 막아주는 방패 같은 월급을 주기도 한다.


우리 내면에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빚져 있을 것이다. 유전자는 우리가 잘 생존하면서 번식 활동을 하여 유전자를 계승시키고 불멸하게끔 애쓰길 바란다. 즉, 우리 삶의 동력은 근본적으로 유전자의 전략에 빚져 있다. 그렇다면, 이 생존으로 나아가는 길에 삶의 에너지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 훔쳐 쓸 필요가 있다.


원래 일이란, 바로 그런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것으로 존재했다. 일하지 않으면 인간은 살 수 없다. 어디로든 나서서 사냥감을 찾고 수렵 채집을 해야 한다. 또 다른 마을의 사람들을 만나 물물교환을 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 현대사회의 일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일하는 동안 나아갈 수 있도록, 살 의지를 지닐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일을 하며 타인과 연결되고, 밥벌이를 하고, 일터로 나아가면서 말이다.


미래가 불안하고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고 존재 의미를 찾기 어려울 때, 일단 일을 하면 도움이 된다. 간단한 아르바이트도 좋고, 자기만의 프리랜서 일도 좋다. 어쨌든 일을 하기 시작하면, 대개는 무언가 힘이 생긴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긴 힘을 살짝 훔쳐서 삶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일을 하면서, 어떤 창조성, 자발성, 삶을 사랑하는 힘을 돌려 쓸 수 있다. 삶은 일과 함께 전진해가는 힘을 얻는다. 나에게 일은 글은 쓰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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