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Nov 05. 2023

퇴사할 결심

어제 회사에 퇴사할 의사를 전했다. 회사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내게는 보다 나의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고 있던 터였다. 내가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일, 내일 죽어도 후회없을 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쪽으로 더 다가가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스스로 세상에 서야한다고 느꼈다. 하루하루를 보다 진심으로 사는 삶으로 입장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인생을 걸 만한 화두가 아닌가 싶다.


법의 세계랄 것으로 들어온지도 어언 6년이 지났고, 그 동안 내가 가장 원했던 건 '홀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혼자서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내는 장인처럼 나도 그 누군가의 이야기로부터 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길 바랐다. 그런 능력에 '완성'이 있겠냐만은, 이제는 내게도 그런 능력이 생겼다고 느낀다. 실제로 회사에 있는 동안에도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내게 문제 해결을 호소해왔고, 나는 그걸 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하나 느꼈던 건, 나는 '나'를 보고 내게 찾아온 사람들에게야말로 진심을 다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고, 거기에서 훨씬 더 큰 보람을 느꼈다는 점이다. 같은 프로세스의 같은 일이라도, 내게 온 사람들에게는 마음가짐 자체가 아주 크게 달라진 걸 느꼈다. 법적인 일이라는 건,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자라 해도 항상 '최고의' 결과를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나 '최선'은 있다. 지난 몇 년간 최선은 진심을 다하는 데 있다는 걸 아주 명확히 깨달았다. 최선을 찾으려면, 진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법과 관련된 일 뿐만이 아니다. 가령, 일회성 강연이라든지, 글쓰기 모임이라든지,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조차 마찬가지다. 내가 세상에서 최고의 강의는 할 수 없고, 항상 최고의 선생일 수도 없으며, 세계 제일의 글을 쓸 수도 없다. 그러나 내게 인연이 닿은 그 모든 이들에게 최선의 것은 전할 수 있다. 거기에 필요한 건 자기 마음의 안쪽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진심어린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진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매년, 매일 깨닫고 있다.


진심을 벗어내고 살면, 허무해지고 무기력해진다. 바람 빠진 풍선이나 병든 닭처럼 삶이 무미건조해진다. 편안함과 안락함은 있어도 그것은 내가 한 번 뿐인 삶을 살고 싶은 방식은 아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좋은 동료들이 있고, 역사를 자랑하는 로펌에서 근무하여 자랑스러웠지만, 내게는 더 진심인 길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나는 나의 삶을 살아보기로 했고, 그것이 두렵다면, 역시 두려운 길을 가보기로 했다.


그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 가장 생생한 마음이 남아 있을 때, 글로 남겨둔다. 내가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면서, 그러니까 가족의 안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더 진실한 삶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내 지난 삶의 수많은 선택들이 참으로 어려웠지만, 그 선택들은 어느 정도 일관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 하나 뿐인 삶을 진심으로 살아내면서도, 내가 온전히 나와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과, 또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지킬 수 있는 그런 방향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너무도 어려웠고, 너무도 많은 시간과 마음과 불안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방향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또 내게는 나의 삶을 살 시간이 오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이 때때로 삶을 구원하는 방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