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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Dec 28. 2023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

Unsplash의Jacek Dylag

요즘 들어, 세상은 언제든지 나에게 등을 돌릴 수 있고, 나도 언제 몰락하거나 바닥에 내팽개쳐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든 벼락처럼 실패가 찾아올 수도 있고, 몇 가지 실수로 인해, 혹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혹은 사소한 욕심들로 인해 끝을 모를 나락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종종 드는 것은, 어쩌면 세상이 그만큼 냉혹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예전의 마음이었다면 어쩐지 홀로 남겨지는 '몰락' 같은 건 좀처럼 인간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내게는 오랜 친구가 있어 그는 그래도 술 한잔 기울이며 나를 다독여주고 도와줄 거라 믿었을 것 같다. 혹은 내가 큰 몰락을 겪더라도, 가족 만큼은 끝까지 남아서 그 고통을 나누어줄 거라고도 믿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세상은 그런 이야기들이 어울리지 않게 된 듯하다.


한 때는 친구를 위해 보증을 서주는 게 당연한 시대가 있었다면, 이제 친구를 위해 보증을 서는 건 정신나간 짓으로 여겨진다. 가족을 위해 너무 큰 희생을 하기 보다는,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아예 가족을 만들지 않기를 권유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태의 현명함이 분명히 있지만, 동시에 그 '현명함'에 물들면서, 내 삶을 보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생각하게 된 것도 사실인 듯하다. 내가 바닥에 이르면, 내 곁에 남아 내 편으로 남아줄 사람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윈-윈할 수 있고, 상호이익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건 맞는 이야기다. 나 또한 그런 것을 지향하고,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서로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런 이익 관계를 넘어서서, 그저 삶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몇몇은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아내는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자기의 진짜 고민을 들어주며 곁에 있어줄 친구가 2명 있으면 죽지 않는대. 1명 있으면 죽고." 요즘 나는 주위에 고통 나누기를 조금씩 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나의 고통이나 사연은 다소 숨기면서, 좋은 모습만 보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몇 년 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당신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그 대신 나도 나의 고통을 당신에게 나누는 일들을 조금씩 하고 있다. 그것이 나와 당신을, 우리를 살게 할 것 같아서다.


한편으로는, 삶의 초점을 거대한 인정이나 화려한 성공, 온 세상의 스포트라이트가 있을 것만 같은 어떤 단상이 아니라, 손 뻗으면 닿을 곳, 몇 걸음이면 닿을 곳에 두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개츠비처럼 수평선의 초록빛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주변이 공허한 어둠으로 가득 차있다는 걸 못보게 될지도 모른다. 삶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건 여기에서 삶을 나눌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과 손을 잡고, 이 모든 폭풍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삶의 허구들이 힘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나란히 서서 계속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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