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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사기꾼인 걸 알게 되면

by 정지우

사랑하던 사람이 사기꾼인 것을 알게 되면, 사랑은 거의 그 즉시 거두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 순간 사랑을 거둘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긴다. 그 사람을 믿고 있는 동안에는 사랑도 끈질기게 이어지지만, 그 믿음의 끈을 놓는 순간, 사랑은 증발해버리고 만다. 이것은 사랑의 가장 기묘한 측면이라 할 법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기꾼인 걸 알게 되어도, 그 사람이 그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가 보는 건 과거 내가 그 사람이 '진짜'라고 믿고 있었던 시절의 그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진짜 그가 아니다. 우리가 믿고 싶은대로 믿었던 그의 환영이다. 달리 말해, 그리운 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믿음, 나의 환상 그 자체이다.


그래서 사랑이란, 거의 내가 믿고 싶은대로 믿고, 그 믿음을 사랑하는 일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은 나의 믿음에 대한 사랑과 거의 착종되어 있다. 그 사람에게 투사한 나의 희망, 꿈, 행복해질 거라는 환상, 그가 나를 위해서 좋은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믿음, 그것들 없이 가능한 사랑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즉 '내'가 배반당할 때, 대개 사랑도 거의 끝난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영원한 자기애에 갇혀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사실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에 덧씌워놓은 '나의' 믿음, 환상, 기대 같은 것이라면, 사랑의 허망함을 완전히 거두기 어렵다. 흔히 대부분의 사랑은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해지는 순간 끝이 난다.


그럼에도 그토록 유약한 사랑, 기껏해야 나의 믿음과 환상에 기생해서야 간신히 존재할 수 있는 그 사랑에도

'위대한 지속 가능성'이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이를테면, 두 사람이 서로를 간절히 믿고 사랑하는 과정에서, 그 최초의 믿음이 배반당하는 무수한 순간들을 이겨내면서, 서로에게 씌워두었던 자기애의 꺼풀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온전히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하는 삶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기적같은 일치의 순간, 사랑에도 태생에 없는 희망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태생에 없는 희망이 아니라, 벗겨보아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랑의 진정한 핵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일방적인 의지만으로도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한쪽이 끝까지 믿어도, 다른 한쪽이 끝까지 사기친다면, 애초에 사랑의 핵에 도달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사랑의 조건은, 두 사람의 기적같은 믿음의 일치이고, 그 믿음이란 '믿음의 믿음'일 것이다. 즉, 자기애적인 믿음이 배반당하는 순간에도, 그 꺼풀 벗겨진 당신을 믿는 그 '믿음의 믿음'이 사랑의 핵에 들어서는 열쇠일지 모른다.


그 믿음의 믿음, 그럼에도의 사랑, 나와 당신이 서로 앞에서 환상을 벗고 마주하면서도 이어지는 그 새로운 기대, 함께하는 삶으로 피어오르는 이전에 없던 환영의 시대가 그 누군가에게는 가능한 사랑으로 주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길을 걷고자 하는, 마땅한 두 사람이 만나 그 길을 기어코 걸어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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